'김우중 사관학교', 김우중의 후예들 세계경영 잇는다

입력 2019-12-15 17:47
수정 2019-12-16 00:56
“대우의 성공과 실패는 역사 속에 남겠지요. 이제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려고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지난 9일 타계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생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가 타계 직전까지 베트남에서 ‘제2의 청년 김우중’을 키워내기 위해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GYBM)’ 사업을 해온 이유다.

김 전 회장은 2009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설립하고, 2년 뒤인 2011년 GYBM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등 4개국에서 활동하는 GYBM 출신 청년 사업가만 1150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 14일 베트남 하노이 국가회의센터에서 GYBM 총동문회를 결성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청년 사업가들의 네트워크다.


‘청년 사업가 양성’ GYBM 총동문회 결성

고인은 생전에 “GYBM이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청년 인재를 키우는 데 애착을 가졌다. 그와 동고동락했던 ‘옛 대우맨’들도 뜻을 함께했다. 십시일반으로 장학금을 마련해 2012년 베트남 달랏에서 1년 과정으로 1기생 40명을 교육했다. 베트남 남부의 고원 지대인 달랏을 택한 건 달랏외국어대 한국어과에 재직 중이던 한인 교수와 김 전 회장의 인연 덕분이었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대우그룹은 해체됐지만 대우 정신을 이어 갈 신입사원을 뽑는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김 전 회장은 기숙사에서 사용할 침구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공을 들였다. 학생들이 낯선 나라의 음식에 지칠 무렵이면 직접 달랏으로 날아가 삼겹살 파티를 열어줬다. 1기 졸업생으로 벨기에 회사에 취업해 하노이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양난희 과장은 “(김 전 회장이) 오실 때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이 부럽다. GYBM이 언젠가 화교 못지않은 한인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고 회고했다.

‘김우중 사관학교’로도 불리는 GYBM은 올해도 베트남(100명), 인도네시아(30명), 미얀마(20명)에서 150명(9기)을 뽑았다. 사업 초기에만 해도 베트남에서 30여 명을 선발했던 걸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장 회장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각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인재”라며 “현지 언어는 물론 각종 사업 실무 교육으로 중무장한 GYBM 졸업생들에 대한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짧은 과정임에도 GYBM의 취업률은 100%에 달한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해 밤 9시까지 압축적으로 현지 지식을 습득한 덕분이다. 직무 교육은 ‘옛 대우맨’들이 직접 체험한 사업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금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은 “졸업생 규모에 비해 기업들이 원하는 수요가 거의 두 배가량 많다”고 말했다. 정부도 GYBM의 성과를 인정해 ‘K-무브’ 사업의 하나로 2014년부터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동남아 창업 시장서 한 단계 도약

GYBM은 4개국 네트워크 결성을 계기로 한 단계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 주요 국가를 아우르는 창업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란 점에서다.

인도네시아 과정 1기생으로 2014년 GYBM에 입학한 백용재 씨(봉제회사인 ‘두산 찝타 부사나 자야’ 대리)는 “GYBM에 들어가기 전에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에서 2년 정도 일했다”며 “인구가 2억 명을 웃도는 인도네시아에서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해외 취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졸업생들은 멘토들과 함께 창업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이희재 GYBM 멘토단 대표는 예비 청년 사업가들에게 “창업을 비롯해 요즘 사업은 혼자 할 수 없고, 하나의 나라에만 국한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장 회장은 “총동문회 결성은 제2의 김우중을 만들기 위한 소중한 기회”라며 “4개국 동문들 간 소통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업에 도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기업가 김우중’을 향한 추모도 이어졌다. 박노완 주베트남 대사는 추도사를 통해 “대우의 세계경영이 먼저 있었기에 지금의 신남방정책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