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에 오르며 대우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자산 규모가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두 번째로 큰 대우였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무색했다.
‘탱크(TANK)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중 하나로 꼽혔다. 프랑스의 유력 회사를 인수할 것이란 소문도 돌아 “대우가 그 정도로 성장했나”하는 생각에 국민들도 내심 우쭐했다.
그러나 태국과 홍콩을 거쳐 몰아닥친 ‘동아시아 쇼크’로 인해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바닥났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해방 이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국민이 입은 자존심의 상처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대우그룹은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들게도 했다. 꼭 그렇게 공중분해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진취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힘써온 회사였기에 하는 말이다. 한창나이에 날개가 꺾인 김우중 회장의 소식을 간간이 접할 때는 마음이 착잡했다.
분식회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룹의 공중분해에 뭔가 경제 외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그때 이후 김우중 회장과 같은 강력하고도 공격적인 경영으로 승부를 보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기업이 많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닌가.
전 세계를 누비며 도전의 인생을 살아왔던 ‘세계경영의 거인’ 김우중 회장이 눈을 감았다. 개인적으론 자친(慈親)의 연세와 같아 더 관심이 갔는데 생을 마감한 해도 같아 뭔가 여운이 남는다. 결과적으론 실패한 기업인이 됐지만 그의 강한 도전 정신은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구영 < eet99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