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잡(Mcjob)’은 맥도날드잡(McDonald Job)의 줄임말로 ‘소매점포의 시간제 저임금 일자리’를 뜻한다. 비슷한 신조어 ‘맥뱅크(Mcbank)’는 맥도날드처럼 운영하는 은행을 의미한다. 맥잡의 부정적인 느낌과 달리 ‘은행업의 혁신적 도전자’라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맥뱅크는 1970년대 초반 미국 소형은행에서 출현했다. 소매점처럼 꾸민 외관과 인테리어로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1년 365일 연중무휴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영업한다. 대형은행과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햄버거 체인점과 편의점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영국 중견은행인 애비내셔널(Abbey National)은 2002년 커피전문점 코스타를 지점 내에 유치해 성과를 거두자 수십 개로 확대했다. 고객 편의성과 점포 집객력을 동시에 높이려는 의도였다. 당시 한국에서 은행은 요충지 거리의 번듯한 건물 1층을 차지하는 고상한 업종으로, 여타 가두 소매점과의 동거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이는 국내 은행들이 단독 점포로도 충분히 수익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보급과 온라인 뱅킹 등 비대면 채널 확대로 점포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국내 은행 일부 지점에 커피숍이 입점하기도 했으나 실험에 그쳤다.
맥뱅크, 커피숍뱅크 등 아날로그 시대 은행의 고객 확보를 위한 시도들은 나름 틈새시장을 개척했으나 기존 판도를 흔들지는 못했다. 1995년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인터넷 은행도 마찬가지다. 초기의 높은 기대와는 달리 2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찻잔 속 태풍’에 머물러 있다. 기존 대형은행이 ATM 보급과 온라인 서비스 등 비대면 채널을 적극적으로 확충하면서 산업 내부적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인터넷 은행 총자산은 전체 은행 대비 3% 수준으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맥뱅크, 커피숍뱅크, 인터넷뱅크는 참신했지만 모두 기존 산업 내부에서의 국지적 변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시도되는 대형은행 간 점포 공유는 산업 외부에서 덮쳐오는 격변의 예고편이다. 영국의 로이드·바클레이스·스코틀랜드왕립은행 등 대형 은행 세 곳은 지난 3월 공유점포 1호점을 개설했고 다른 대도시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무사시노은행과 지바은행이 공동점포를 개설했고, 올해는 5대 은행인 미쓰비시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ATM 공유를 시작했다. 대형 은행조차서 기존 아날로그 점포망 유지가 어려움을 반증하는 사례다. 소매유통업에서 오프라인 점포가 온라인 사업자에게 밀려나는 양상이 금융업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산업 격변의 촉매제는 디지털 기술이다. 기존 금융산업 구조에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핀테크의 차원을 넘어 기술기업이 금융 분야로 진출하는 ‘테크핀’이 변화의 주도자다. 최근 구글 아마존 애플 등 디지털 간판 기업들이 ‘페이’ 등 결제 서비스에서 출발해 소비자 대출, 부동산 담보대출 등 전통적 금융업무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금융산업 특성상 기존 금융기업과 제휴하는 형태가 주종이지만 실질적인 사업 주도권은 기술 기업에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금융업이 물리적 점포망과 독점적인 결제 시스템에 기반해 성립됐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데이터 기반으로 고객 정보를 분석하는 정보처리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터넷 은행의 금산분리(金産分離)에 따른 지분보유 제한을 완화하는 논의를 벌이는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산업 간 융합이다. 과거 분리됐던 산업들이 데이터와 플랫폼을 매개체로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되고 있다. 테크핀의 등장은 이런 추세가 금융업으로 파급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 금융산업도 정책 방향과 사업 방식 모두 아날로그 시대의 관점에서 탈피해야 미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