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판 비욘드 미트' 규제개혁에 달렸다

입력 2019-12-11 17:39
수정 2019-12-12 00:05
정부가 식품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시점을 2008년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꽤 많다. 이를 기준으로 이미 11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식품산업 정책들이 기획·추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식음료제조업 기준 국내 식품산업 시장은 2008년 55조원에서 2018년 92조원 규모로 늘어나는 등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영세한 산업구조, 대기업과 대리점 간 갈등, 낮은 연구개발(R&D) 투자 수준, 잊을 만하면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식품안전사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다.

최근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구조와 소비 트렌드에 식품산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는지 의문도 제기된다. 냉동식품 등 간편식은 젊은 층의 주식이 돼 어머니의 밥상을 대체하고 있고, 출산율은 0%대로 진입해 분유 등 관련 유제품 시장의 미래가 밝지 않다. 반면, 반려동물 시장은 급성장해 펫푸드 등 관련 시장에 대한 업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은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관련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마음만 급한 형국이다.

최근 정부가 식품산업 활력제고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식품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3개 부처가 협업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존 대책들과 달리 실효성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용을 보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맞춤형 특수식품·기능성식품, 간편식품, 친환경식품, 수출식품을 5대 유망 식품 분야로 선정하고, 이들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개인의 특성과 기호를 충족시키는 맞춤형 식품에 대한 수요 증가 추세에 발맞춰 선진국처럼 푸드테크 기반의 메디푸드, 대체식품, 고령친화식품 등 유망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려 한다. 또 정체 상태인 국내 식품시장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수출로 풀어 보겠다고도 한다. 일단 방향은 맞아 보인다.

다만 정부가 제시하는 길을 업체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따라갈 수 있을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 식품기업의 90% 이상이 10인 미만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 식품업체들이 새롭지만 낯선 길로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R&D 기술, 전문인력, 투자자금 등 ‘3종 세트’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체감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업체 수요를 꼼꼼히 분석한 다음 대상별로 지원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 안전·위생과 직결되지 않은 규제는 과감히 개선해 한국에서도 ‘비욘드 미트’, ‘임파서블 푸드’ 같은 세계적인 푸드테크 업체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2008년 농식품부 설립 당시부터 주요 정책과제였던 식품산업의 국산 원료 농산물 사용 확대를 위해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농업투자를 통해 식품가공용 원료 농산물 생산에 적합하도록 품종 개량, 재배기술 개선과 함께 생산 규모를 키우고, 생산자 조직화 등 체질을 개선해 우리 농산물의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을 구분해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 및 미래 시장을 선도하고, 중소기업은 전통식품 및 생활형 식품시장을 주도하는 등 각자의 길을 찾아가면서 공생하며 성장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식품산업의 활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식품기업인, 농업인들이 기존 인식틀을 어떻게 바꾸고, 서로 협업하는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계획 마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식품산업의 길은 변화무쌍하고 험난하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는 상황)의 탄식이 나오지 않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