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투약기' 상용화 6년째 불허, 그새 中이 추월…투자자도 떠나

입력 2019-12-11 17:40
수정 2019-12-12 01:28
쓰리알코리아 창업자인 박인술 연구소장은 2013년 늦은 밤 문 연 약국을 찾아 헤매는 환자를 위해 화상투약기를 개발했다. 6년이 지났지만 제품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약품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약사법 등에 막혀서다. 그는 “한때는 중국 수출도 꿈꿨지만 지금은 꿈도 못 꾼다”며 “국내 규제에 막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소장은 서울 동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약사다. 그가 개발한 화상투약기는 환자가 먼 거리에 있는 약사와 통화한 뒤 약을 살 수 있는 기기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선 온라인으로 약을 구매하고 택배로 받아볼 수 있는데도 국내에선 약사 등의 반대로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계획이 발표되면서 박 소장은 사업 희망을 다시 키웠다. 올해 1월 실증특례 안건으로 신청하고 수차례 부처 간 논의가 오갔지만 지난달 말 연내 통과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위해 7억원 정도를 더 썼다”며 “기대에 부풀어 양산 준비까지 마쳤는데 이제는 제품을 팔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김명진 올비 대표도 기로에 서 있다. 그는 기저귀 또는 허리벨트에 붙이면 아기 호흡상태, 수면시간 등을 알려주는 제품을 2016년 개발했다. 하지만 낡은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로 허가받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로 허가받으려면 거액이 드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미국 등 해외에선 공산품으로 분류돼 별도의 임상이 필요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권 등에서 논란이 일자 식약처는 지난해 의료기기가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김 대표는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을 확대하는 시범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의료기관이 아니라 집에서 간편하게 유전자 검사를 받는 서비스다. 보건복지부는 올 2월 DTC 허용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57개로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 업체 대표는 “의사·시민단체 등은 물론 공무원 사이에도 DTC 항목 확대에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이지현/임유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