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오는 12일 열리는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실질적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한은 또 다시 연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브렉시트 여부와 상관없이 영국이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실패할 경우 당초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영국의 EU 관세동맹·단일시장 잔류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코트라(KOTRA) 런던무역관은 1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한·영 통상포럼’을 개최했다. 브렉시트 운명을 결정짓는 영국 총선 이틀 전에 열린 이날 포럼엔 80여명의 한·영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포럼 강연자로 나선 영국 통상 전문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링거의 마이클 라판 변호사는 “집권여당인 보수당이 이번 선거에서 안정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영국의 실질적인 EU 경제권 탈퇴는 또 다시 연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오는 크리스마스 연휴 이전에 브렉시트 이행 관련 법안을 하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EU와 합의한 대로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유고브 등 각종 여론조사기관은 이번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326석)을 무난히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영국이 내년 1월말 브렉시트를 단행해도 경제 분야에서 당장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전환기간(준비기간)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영국과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 전환기간 종료일을 내년 12월31일로 정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더라도 전환기간 동안엔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하기로 합의했다. 이 기간 동안엔 지금처럼 역내 사람과 자본, 상품,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 영국이 형식적으로는 EU에서 탈퇴하되, 내년 말까지는 EU 관세체계를 유지하는 등 경제 분야에선 달라지는 것이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전환기간은 영국과 EU가 모두 합의하면 한 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내년 7월1일 이전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전환기간 동안 EU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통상 관계의 연속성을 유지해 브렉시트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영국 정부가 전환기간 내 EU 등과의 FTA 체결에 실패하면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아무런 합의없는 EU 탈퇴)에 버금가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라판 변호사는 “브렉시트의 전제는 영국 정부가 EU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과 FTA를 체결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EU와 FTA를 체결하기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정부는 1973년 EU에 합류한 이후 독자적인 무역협상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며 “전문성 부족 등으로 협상력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무역 분야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스테판 울콕 런던정경대(LSE)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포럼의 첫 번째 연설자로 나서 미·중 무역분쟁 등 최근의 글로벌 통상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정부의 무역정책을 ‘신중상주의’로 규정했다. 정부가 관세정책 등을 앞세워 특정 국가의 수입을 제한하고 국내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경제적 우위를 점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뜻이다.
울콕 교수는 거대한 경제 규모를 보유한 중국의 부상이 국제무역관계의 틀을 바꿨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글로벌 시장이 특정 국가의 시장 개입에 대해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영향도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거대한 경제규모를 보유한 중국이 정부 주도 하에 시장에 개입하면서 글로벌 무역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울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미·중 무역분쟁이 지속되면 미국과 중국에만 이득이 될 뿐 나머지 국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무역시장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