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재산의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각 지자체는 회계장부와 공유재산 대장을 사실상 ‘이중장부’로 관리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통계들도 제각각이다. 이 같은 공유재산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예산 낭비와 정책 비효율을 양산할 뿐 아니라 각종 토착 비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공인회계사회와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해 지자체 결산서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를 비롯한 17개 광역시·도의 재무제표상 유형자산(일반유형자산, 주민편의시설, 사회기반시설) 규모는 476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광역시·도의 별도 대장에는 이들 유형자산에 해당하는 공유재산 및 물품이 304조5000억원으로 등재돼 있다. 같은 항목임에도 재무제표와 공유재산 대장 간에 170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그만큼 회계장부에 인식된 자산이 공유재산 대장에 누락됐거나 축소 기재됐다는 뜻이다.
행안부가 집계하는 통계도 부실하다. 행안부가 243개 지자체에서 현황을 받아 집계한 전체 공유재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40조1000억원이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지방재정 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365’에 공시된 전체 공유재산 규모는 798조1700억원이다. 똑같아야 할 수치가 58조원 이상 벌어져 있다. 행안부는 지방재정365 공시에 오류가 있다며 부랴부랴 원인 파악에 들어갔다.
한 행정학자는 “공유재산이 누락되거나 이중 기재되는 등 엉터리로 관리되고 있어 어느 누구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공시된 수치가 취득원가 기준임을 고려하면 지자체의 실제 공유재산 가치는 1000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경작지에 불법펜션·공유지 헐값 매각
지자체 재산은 '눈먼 땅'
#1. 이공휘 충청남도 의원은 관광단지로 개발을 추진 중인 안면도의 공유재산 목록을 살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주거·경작용으로 시세보다 싸게 임대해온 충청남도 소유 부지에 버젓이 펜션과 상가,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별장을 세우기 좋은 금싸라기 도유지엔 지역 주민이 아니라 서울 거주자가 임차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의원은 지난해부터 충청남도의 공유재산 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2. 경기 가평군은 2014년 장애인복지센터 신축 명목으로 개인 소유 땅 3900㎡를 약 7억원에 매입했지만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 신축비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가평군이 매입한 부지는 가평군수의 재보궐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사무장 배우자의 소유지였다. 이 배우자는 땅을 사들인 지 1년9개월 만에 가평군에 팔아 3억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다. 감사원은 가평군수를 직권남용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유재산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유재산은 지역주민 복지와 재정수입 확보에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에도 오랜 기간 방치되거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사례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에 재산 누수
감사원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단체 전환기 취약분야 특별점검’을 통해 지자체에 대한 집중 감사를 벌이고 있다. 지자체장 등의 권력형 비리, 공무원과 지방세력 간 토착 비리 등이 주요 감사 대상이다. 감사원이 적발한 각종 위법행위 중 공유재산과 관련된 게 여럿 포함돼 있다.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남 고흥군은 민간 콘도 시설을 유치하면서 공익사업인 것처럼 가장해 저가에 토지를 팔아넘겼다. 고흥군의 한 직원은 공유재산으로 관리하던 폐교를 중학교 동창에게 민간숙박시설 용도로 매매계약하는 특혜를 제공한 것이 적발됐다. 지자체별로 공유재산과 관련한 이 같은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수의 토착세력이 공유재산으로 이익을 취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건 불투명한 관리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유재산 누수를 막고 활용도를 높이면 세외 수입이 늘어나 주민의 세금 부담도 덜 수 있는 만큼 공유재산 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먹구구식 공유재산 통계
지자체 소유 재산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같은 항목인데도 공유재산 대장에 기재된 수치와 재무제표상 수치가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경상북도는 재무제표상 24조70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등 유형자산이 있음에도 공유재산 및 물품 대장엔 3조원가량만 등재했다. 경상북도의 자산 대비 불일치 비율은 88.1%로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높았다. 전라남도(77.2%), 경상남도(68.2%), 충청남도(65.5%) 역시 장부 간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시·도 중 이 비율이 가장 낮은 전라북도(4.1%)는 최근 11조원에 달하는 누락 공유재산을 추가로 기재하면서 장부 간 간극을 좁혔다. 송지용 전라북도 의원이 공유재산 보고서의 금액이 현저히 적은 것을 보고 누락 재산을 찾아내 정정한 결과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공유재산의 가격 평가 등 회계처리는 지자체 회계기준을 따르도록 했다. 지자체 회계기준에선 취득원가로 자산을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정원 한국공인회계사회 공공회계연구팀장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과 지자체 회계기준상 가격 평가 방법이 취득원가로 동일하기 때문에 같은 항목에선 수치도 같은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유휴재산 활용 나서야”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 관리를 벤치마킹해 공유재산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유재산은 정부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과 국유재산 통합관리시스템을 연계해 누락과 오류 등을 없앤다. 감사원 결산검사 때 국유재산 및 물품 장부와 재무제표상 관련 자산내역을 대조해 차이가 나는 부분은 감사 보고서에 표시하도록 돼 있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공유재산 장부는 등기부등본 같은 역할에 머무르고 있어 유휴재산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재산 시스템처럼 소유, 위탁관리, 매각 등 모든 과정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 공유재산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재산.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르면 부동산, 선박, 항공기뿐 아니라 공영시설에 사용하는 기계, 지상권, 전세권, 저작권, 유가증권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