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트루쇼 회장 "요즘 소비자는 능동적 시민…제품·평판 함께 구매하는 시대 왔다"

입력 2019-12-10 18:07
수정 2019-12-11 01:59
SK는 요즘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기업’이란 메시지를 담은 유튜브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SK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목적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공감’이란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인 사이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업의 성장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입소스(Ipsos)가 지난 9월 내놓은 조사 결과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기업소셜임팩트 조사(CSIS)에서 응답한 소비자의 82.8%가 제품, 혹은 서비스를 구매할 때 해당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다. 기업이 물건만 잘 만들면 팔려나가던 시대는 끝났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생존마저 불투명하다. 조사를 실행한 입소스의 창업자 디디에 트루쇼 회장(73·사진)이 지난 4일 방한했다.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입소스는 미국 닐슨, 영국 칸타 등과 함께 세계 3대 마케팅 시장조사 업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쉽게 말해 시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을 구매해 주는 사람을 소비자로 인식했습니다. 소비하는 주체인 것이죠. 소비자로만 대할 땐 물건만 팔면 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삶에서 늘 소비만 하진 않습니다. 백화점에선 소비자이지만, 집에선 아버지일 수도 있고, 회사에선 중역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업은 다양한 역할을 하는 온전한 시민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바뀐 것인가요.

“시민이 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죠. 시민은 더 이상 자신을 소비자로 한정해 기업을 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물건을 살 때 기후변화를 생각합니다. 제품을 생산한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는지 고려합니다. 상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판단합니다. 시민이 기후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기업도 기후변화에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예전과 다르게 행동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말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많은 기업이 CSR에 관심을 두기는 했지만 실행으로 옮긴 곳은 적습니다. 기후변화를 얘기하면서 사내에선 수많은 플라스틱을 씁니다. 입소스도 내년부터 사내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할 예정입니다. 프랑스 본사 직원 800여 명은 지금도 플라스틱 물병을 쓰지 않습니다. 내년부턴 출장 횟수를 20%가량 줄일 예정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출장을 가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많습니다. 저소득 아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재단도 5년 전에 세웠습니다. 네팔 지진이 있었을 때 입소스는 현지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40여 개 분야에서 입소스는 사회적 지원을 합니다. CSR의 핵심은 기업이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실천입니다.”

▷소비자가 기업 평판을 예전보다 더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평균 학력이 높아지고, 정보를 보다 많이 접하게 되면서 소비자는 자신들이 어떤 상품을 구매해야 할지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이 과거처럼 마케팅을 하거나 판촉 행사를 하면 효과를 보기 점점 어렵다는 얘깁니다. 소비자가 똑똑해져 일방적인 기업 메시지는 잘 수용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가족의 구매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선 한 집안에서 같은 브랜드의 차를 타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푸조를 타면, 아들도 푸조를 사는 식이었죠. 요즘은 오히려 이런 집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장 예측도 점점 어려워질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30년 전에 자동차 제조사는 모델별 판매량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요즘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스마트폰만 해도 그렇습니다. 화웨이는 몇 년 전부터 유럽에서 급성장했습니다. 삼성, 애플을 제칠 정도였습니다. 독일에선 2년 만에 시장점유율이 30%까지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 문제가 불거진 뒤 최근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요즘은 매우 흔하게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기업이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잘못한 것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업, 혹은 브랜드에 대한 인식과 기업들의 행동 사이에 일관성이 없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평소 가장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놓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초과 예약을 받고, 일부 승객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기업 행동과 가치가 일치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평소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기업에 실제 부정적 이슈가 터졌을 때는 문제가 더 커집니다. 페이스북이 그런 예입니다. 사용자들은 예전부터 페이스북이 사용자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을 우려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개인정보가 사용자 동의 없이 사용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페이스북 안 쓰기 운동이 크게 확산됐습니다.”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면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우선 당사자와 깊은 공감을 이뤄야 합니다. 언론 등 사회와 즉각적인 소통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한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 전문가이십니다. 기업은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기술의 발전 덕분에 기업에 엄청난 데이터가 쌓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대부분 모른다는 것입니다. 빅데이터는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필요합니다. 빅데이터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목적을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필요 없는 데이터를 걸러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데이터를 다 활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각 데이터를 통합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맥주 회사는 언제 맥주가 잘 팔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그렇습니다. 여름에는 맥주 판매가 20~30% 늘어납니다. 이 데이터를 생산량, 물류 등과 통합한다면 재고 관리가 용이해지겠죠. 각 데이터를 어떤 다른 데이터와 통합할지 결정하는 것이 빅데이터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기업이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면 입소스 같은 시장조사 업체는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장은 한 해 800억달러 규모에 이릅니다. 연간 4~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구글 같은 회사에는 못 미치지만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산업은 정보가 귀하고 비쌌던 100여 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기업이나 정부는 정보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입소스가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시장조사 업체들과의 차별점이 있나요.

“입소스는 리서치 전문가들이 경영하는 유일한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입니다. 금융사나 대기업 소유가 아니란 얘기입니다. 전략 컨설팅 기업 맥킨지와 비슷한 부분인데, 맥킨지는 주식회사가 아니니까 주식회사인 골드만삭스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입소스는 리서치 전문가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의사 결정을 합니다. 두 번째는 다양성입니다. 칸타는 임원 대부분이 영국인입니다. 닐슨 임원은 미국인으로 많이 채워졌습니다. 입소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객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고객사 요청에 부정적 답변을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삼성이 입소스와 15년간 꾸준히 일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 트루쇼 회장은…

디디에 트루쇼 회장은 1975년 시장조사 업체 입소스를 창업했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하며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로 키웠다.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 소비자 조사 전문기업 시노베이트를 인수했다. 소셜미디어(SNS) 조사 전문업체 신세시오를 작년에 인수했다. 같은 해 독일 시장조사 업체 지에프케이(Gfk)의 소비자 조사부문도 사들였다. 현재 입소스는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업체 중 미국 닐슨, 영국 칸타에 이어 세계 3위다. 90여 개 국가, 2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시장 조사를 하고 있다. 입소스는 소비자 만족도, 기업 평판 등 시장 정보를 주로 기업에 제공해 매출을 올린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의 소비자 조사를 맡고 있다.

△1946년 프랑스 출생
△1969년 프랑스 파리대학원 경제학·사회학 석사
△1969년 프랑스 여론 조사기관 IFOP 조사 연구원
△1973년 프랑스 소비자 조사기관 IRSEC 연구원
△1975년 입소스 창업
△1990년 미국·유럽 진출
△1997년 아시아 진출
△1999년 프랑스 증시에 기업공개
△2011년 마케팅 리서치 기업 시노베이트 인수
△2018년 소셜미디어 마케팅 리서치 기업 신세시오 및 Gfk 소비자 조사부문 인수
△현 입소스 회장

안재광/오현우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