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재위기간 한글 창제를 비롯해 신기전, 측우기, <농사직설> 등 과학에서 농업, 의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이뤘으니 그럴 만하다. 세종대왕이 다스리던 당시의 조선은 오늘날로 치면 4차 산업혁명급 발전을 집중적으로 이룩한 나라였다.
세종대왕 업적의 밑바탕에는 개방성이 자리잡고 있다. 노비 신분이지만 과학 인재였던 장영실에게 벼슬을 내리고 연구에 집중하게 한 끝에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측우기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대중의 참여로 해결책을 얻는 크라우드 소싱 기법을 일찌감치 활용했다. 세계 최초로 17만 명의 백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비옥도에 따라 토지에 조세를 부과하는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을 도입했다.
지난여름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개방성의 백미를 보여주는 영화다. 세종이 숭유억불 정책으로 당시 배척 대상이던 불경에 쓰이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 외국어를 받아들이고 스님들과 함께 한글을 완성한다는 줄거리다. 가장 높은 지위의 임금과 가장 낮은 자리의 스님의 콜라보와 새로 태어난 문자를 익히고 퍼트린 궁녀까지 영화는 한글이 모두의 성취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개방성은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밋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2013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종대왕의 혁신은 개방성 덕분에 가능했으며, 혁신을 위한 최우선 원칙은 ‘개방’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개방을 통해 혁신을 꾀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아이디어와 연구개발(R&D) 자원을 함께 활용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국 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10여 년 전 이 개념을 발표한 이후 많은 글로벌 기업이 스타트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발 빠른 실행력을 갖춘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혁신의 속도를 높여주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 기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 마인드다. 무역협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54.2%는 외부 스타트업과 적극 협력하고 있지만, 한국 제조업체의 83%는 여전히 자체 개발에 매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 이노베이션 마인드는 일찍이 세종대왕이 보여준 우리 조상들의 유산으로 한국인의 몸에 내재돼 있다. 이런 DNA를 일깨워 오픈 이노베이션과 혁신 성장에 나서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