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명연장 안한다?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19-12-10 15:29
수정 2019-12-10 15:38

한국경제연구원이 엊그제 발표한 ‘탈원전 정책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는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정부 주장이 맞지 않다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1.3%밖에 되지 않으며, 2030년엔 10.9%에 그칠 것”이라고 공언해 왔지요.

연구원은 “정부 측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용을 지나치게 낮게 계상하고 원전 비용은 부풀리는 식으로 왜곡했다”고 했습니다. 탈원전 및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균등화발전비용(LCOE·Levelized Cost of Energy)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LCOE는 사회·환경적 부담을 모두 포함한 전력생산 비용을 뜻합니다.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를 짜 보니, 국내 전기요금이 2030년까지 25.8% 상승할 것이란 게 연구원의 전망입니다.

이 시나리오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1차 만료하는 원전 14기를 모두 재가동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은 없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과 배치됩니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지금 추산보다 전기요금이 훨씬 더 오를 것”이라며 “정부가 수 차례 공언했던 것과 달리 원전의 수명 연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 원전의 설계수명은 평균 40년입니다. 지난주 준공식을 연 신고리 3·4호기의 경우 최신형이어서 60년으로 좀 더 길지요. 수명 연장은 기본 20년 단위인데 미국에선 60년 가동은 물론 최근엔 80년으로 추가 연장하는 추세입니다. 이와 달리 국내에선 2017년 6월 고리 1호기를 상업가동 38년 만에 중단한 데 이어 작년엔 월성 1호기를 36년 만에 조기폐쇄했지요.

연구원은 또 “정부가 30MW 이상 규모의 태양광 설비에서 2025년 ‘그리드 패리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이런 설비를 구축하려면 39만6000㎡(12만 평) 이상 토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는 재생에너지가 경제성 측면에서 원전을 능가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2025년이면 태양광 발전 단가가 원전보다 싸질 것이란 정부 주장을 뜯어보니, 엄청나게 큰 규모로 지을 때만 가능한데 국내에선 그 만한 토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기요금 전망 모델로 LCOE를 사용했는데, 이는 신규 설비의 발전 원가를 분석하는 데 주로 쓰이는 지표다. 전기요금 분석 방법론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임의로 과소·과대 평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과거 공시지가 기록 등을 참고해 합리적으로 산정했던 것”이라고 반박했지요.

산업부 해명에 대해 조 연구위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정부 역시 LCOE 모형을 바탕으로 발전 단가 변화를 예상했다”는 겁니다. 발전 비용엔 원가와 전력시장 정산비용, 균등화발전비용(LCOE), 시스템 비용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LCOE를 제외하고는 전원 간 발전비용 비교 분석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죠.

전기차 보급 확대 등에 따라 4차산업 시대엔 전기를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가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이 1.0%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 점도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지금도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력수요 전망을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기존 전망치를 맞추려고 기업을 대상으로 전력 감축을 요청해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정부가 해명 자료에서 “2017년 말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30년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18.8%로 예상했었는데,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를 14.5%로 잘못 추산했다”고 적시한 내용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발전 단가가 비싼 LNG 비중이 늘어날 수록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커지기 때문이죠. 조 연구위원은 “정부 말대로 LNG 비중을 더 높이거나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전기요금이 지금 추정보다 훨씬 많이 오르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예상한 ‘10년 후 전기요금 26% 인상’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26% 오르는 전기요금을 독일처럼 가정용에만 부담시킬 경우 가정용 요금이 지금의 3배가 되는 것”이라며 “만약 가정용 대신 산업용에 요금을 전가하면 우리나라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가 공시한 ‘전기요금과 자사 수익 산식’을 따르더라도, 26%의 요금 인상은 국민 부담이 13조원가량 늘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정부 모두 “탈원전 정책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상 폭이죠. 누구 말이 좀 더 사실에 근접하는 지는 내년 요금 정책을 보면 가늠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내년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5%”라고 주장한 반면 정부는 “당분간은 인상 요인이 없다(2022년까지 1.3%)”고 했으니까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