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항구도시 목포는 요즘 활력이 넘치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거리와 1970~19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산동마을 일대는 복고풍(레토로)이 유행하면서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명소가 됐다. 여기에 더해 북항에서 유달산을 넘어 고하도까지 이어지는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세발낙지, 꽃게장, 민어, 먹갈치 등 철마다 풍요롭게 펼쳐지는 미식의 도시 목포. 날이 아무리 매서워져도 목포를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북항서 고하도까지 목포의 진풍경 펼쳐져
항구도시 목포에 하늘길이 열렸다. 북항을 출발해 유달산과 목포앞바다 고하도에 이르는 무려 3.23㎞인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가 문을 연 것이다. 단지 길이만 긴 것이 아니라 타워 높이도 155m나 된다. 탑승시간만 왕복 40분. 하루평균 7000명 정도가 탑승해 지난 9월 개장한 뒤 누적 승선 인원이 40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에서 가장 두꺼운 58㎜의 케이블카 와이어 로프는 1.5t짜리 소형 자동차 170대를 외줄로 끌어올릴 정도의 강도로 안전까지 챙겼다.
목포해상케이블카 논의가 시작된 것은 무려 30년 전. 지역 최대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케이블카 사업은 경관·환경 훼손 논란 등으로 진통을 겪은 끝에 2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 9월 운행을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캐빈을 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고 자리에 앉으니 이내 운행이 시작된다. 캐빈 아래로 바다가 한가득 펼쳐진다. 창 너머로는 유달산의 울긋불긋한 낙엽과 기암괴석이 보인다. 깔딱고개를 넘어 힘겹게 올라야 볼 수 있었던 유달산을 마치 친구의 눈동자를 바라보듯 눈높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반갑기만 하다. 캐빈이 나아가는 길을 따라 선박과 구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캐빈은 유달산이다. 중간 쉼터인 이곳에서 내려 유달산을 오를 수도 있고, 일등바위와 이등바위를 사진에 담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유달산에서 멈추지 않고 고하도까지 내쳐 나아가도 된다. 155m의 메인타워를 지나 캐빈은 다시 바다 위를 넘는다. 멀리 목포대교는 물론이고 신안의 천사대교와 영산강까지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연이어 한눈에 들어온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 느낄 수 있는 고하도
어느새 캐빈은 목적지인 고하도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예전에 고하도를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가거나 목포대교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고하도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깊은 역사적인 유적지다. 일제시대에는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려고 이곳에 목화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정유재란 때 이충무공이 고하도를 전략지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의 혼이 담겨 있는 고하도답게 섬 중간에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을 형상화한 5층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길에 ‘끝까지 올라간 보람을 느끼게 해드립니다’라는 재치있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다리가 뻐근해질 즈음 눈앞에 다도해의 압도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정말로 올라간 보람을 느끼게 된다.
판옥선 전망대 밑에는 고하도의 주상절리를 찬찬히 감상할 수 있는 해안데크길이 놓여 있다. 목포대교와 가까운 곳에 설치된 용머리까지 대략 1㎞ 정도의 시설인데 마치 바닷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해안데크에는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이순신 장군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포토존 역할을 한다. 다시 고하도에서 북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느새 낙조가 펼쳐진다. 해상케이블카는 이 시간이 가장 매력적이다. 황금빛 낙조가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서서히 어둠 속으로 해가 천천히 빨려들어간다.
일제시대와 근대화시대 풍경 느끼는 구도심
역사박물관인 목포 구도심은 일제시대와 근대화 시대의 풍경들이 녹아 있다. 목포 근대문화거리에 있는 근대역사관도 명소다. 아이유 주연의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면서다. 드라마에서는 호텔로 등장했으나 이 건물은 1900년 12월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져 광복 이후에는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문화원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부터 근대역사관 1관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건물 창문 위에는 동그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전범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 뒤에는 6·25전쟁의 상처를 보여주듯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일제시대 파놓은 반공호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서산동은 근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달동네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2017년 개봉해 무려 1000만이 넘는 사람이 감동을 받은 영화 ‘1987’ 촬영지이기도 하다. 시화골목길 초입에 보이는 연희네 슈퍼는 배우 김태리의 집으로 등장했다. 연희네 슈퍼에 들어가면 다이알 비누, 소다, 찐드기 등 추억의 과자와 공산품이 진열돼 있다. 최근에는 목포의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는 ‘롱 리브 더 킹:목포영웅’도 시화골목길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빛을 못 봤지만 배경만큼은 아직도 생동감이 넘친다. 연희동슈퍼를 지나면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정감 넘치는 골목길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골목길 틈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빈집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누추하지는 않다. 골목 담벼락에는 아기자기한 그림과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골목을 벗어나 마을 꼭대기에 오르면 목포 시내와 고하도 사이 바다가 시선을 압도하는 보리마당이 나온다. 주민들은 언덕배기 좁은 땅덩어리를 활용해 보리를 심었고, 마당있는 집이 없어 공동으로 타작하던 곳이 바로 ‘보리마당’이라고 한다. 보리마당 넘어 빈집 사이로 고즈넉한 카페 월당이 나온다. 목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마시는 대추차는 여행의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버린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