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 신라 등 국내 10여 개 호텔에 대한 현장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아고다 호텔스닷컴 등 국내 호텔 예약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들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국내 숙박업체에 ‘최저가 보장’을 요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OTA들이 정부의 ‘자율 개선’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공정위가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6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4일부터 10여 개 국내 호텔에 현장조사 요원을 투입해 OTA와 맺은 계약서 및 거래 관행 등을 조사하고 있다. OTA가 ‘우리 사이트에 최저가로 객실을 공급하지 않으면 판매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국내 호텔을 압박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이런 관행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렇다. ①수많은 OTA가 저마다 최저가 보장을 요구하다 보니 ②호텔로선 모든 OTA에 똑같은 가격으로 방을 제공할 수밖에 없고 ③결과적으로 어디에서나 객실 판매가격이 같아지는 ‘담합’ 효과가 생겨 ④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이 OTA의 최저가 보장 요구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미국에선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A호텔 관계자는 “호텔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예약한 고객에게는 OTA에 주는 수수료(판매가의 15~20%)만큼 싸게 팔 수 있지만 최저가 보장 계약 탓에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인지도와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의 마진을 줄여 판매가격을 낮추는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업계와 달리 OTA들은 최저가 보장에 힘입어 사실상 가격 경쟁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OTA들이 수수료를 많이 쳐준 호텔에 ‘엄지척’이나 높은 평가점수를 주는 관행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돈을 받고 좋은 점수를 줬는데도 이를 명기하지 않았다면 공정거래법상 ‘부당 고객 유인 행위’가 될 수 있어서다. 법조계에선 표시광고법에 규정된 ‘광고 미표시 행위’로 볼 여지도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호텔업계는 공정위가 OTA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주목하고 있다. 공정위가 국내외 OTA 한국여행업협회 한국호텔업협회 등과 함께 OTA 거래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민관협의체를 발족한 지 3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피해자(호텔업계)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OTA가 최저가 보장 자율 개선 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공정위가 칼을 빼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공정위는 호텔 조사가 끝나는 대로 글로벌 OTA에 대한 직접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 OTA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과정을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