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사랑할래? 투자할래?

입력 2019-12-05 18:04
수정 2019-12-06 00:06
그림으로 ‘대박’을 칠 수 있을까? 가끔 해외토픽을 보면 고물상에서 몇만원에 산 그림이 나중에 미켈란젤로의 습작으로 밝혀졌다거나, 빌려준 돈 대신 마지못해 받아둔 그림이 알고 보니 고흐의 그림이어서 수백억원에 팔렸다는 등의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극적인 경우인데도 우리의 뇌리에 팍 꽂혀 기억이 오래갑니다. 한 번쯤 비슷한 얘기라도 들어보셨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오! 그림으로 횡재할 수도 있구나’라고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가 자주 있는 듯 착각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얘기는 10년 혹은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겁니다. 말하자면 로또보다 수백 배는 더 희귀한 확률의 일화인 거죠.

산수 한 번 해볼까요? 로또는 1주일에 한 번씩 터집니다. 앞에서 얘기한 그림 대박은 짧게 10년에 한 번이라 쳐도, 1년은 약 52주, 10년이면 520주이니 로또보다 무려 520배나 더 어려운 확률이라고 봐야지요. 그러면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돌아와서 한 번 보겠습니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돈 되는 그림’은 있을까?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림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똑 떨어지는 그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가까울 겁니다. 그저 화려한 결과만 있을 뿐이지요.

우리나라 그림 중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림은 최근 뉴스가 된 김환기 작품으로 130억원 정도입니다. 그런 그림들은 소문은 무성하지만 일반인에겐 그저 ‘아~그렇구나, 우리나라에도 비싼 그림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자부심 또는 누가 샀을지 궁금한 정도까지가 한계입니다. 즉 ‘돈 되는 그림’이라기보다 이미 ‘돈이 된 그림’인 셈이죠. 그 정도 액수를 감당할 재력이 있는 사람들만의 얘기입니다. 게다가 그런 고가의 그림은 미술관에서 구입하지 않는 이상 그림의 원래 역할인,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합니다. 십중팔구 금고 같은 곳에 깊숙이 숨겨놓듯 보관돼 있을 겁니다. 그 작품은 이제 그림이 아니라 돈이 돼버렸기 때문이지요.

앞의 두 얘기를 종합해 보면 평범한 사람이 그림으로 횡재한다거나 큰돈을 만지기는 지극히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 건데요. 그렇습니다. 그림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추측하건대 그 그림을 샀을 때와 지금의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횡재나 돈 되는 그림 투자와는 거리가 좀 멀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섭섭해 마시고, 대신 그 그림을 샀을 때의 즐거웠던 일들을 한 번 떠올려보기 바랍니다. 그 그림이 거실 벽에 걸림으로써 집안이 환해졌다거나, 그 작가가 그림을 팔고 집에 갈 때 맛있는 치킨이나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갔을 거라는, 혹은 당분간은 작업실 집세가 안 밀리겠구나 하는 흐뭇한 상상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림을 사준 덕분에 이름이 점점 알려져 인기 작가가 된다면 그 그림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그런 거지요. 지금 벽에 걸린 그림은 알게 모르게 한국 미술 발전에 일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건조한 미술 환경에 한줄기 소나기가 돼준 박수받아 마땅한 일, 바로 사랑을 베푼 거랍니다.

오래전 드라마에서 배우 소지섭이 “사랑할래? 죽을래?”라고 한 유명한 대사가 있었습니다. 그림에 적용해서 “사랑할래? 투자할래?”라고 누가 물어온다면 그냥 “사랑할래!”라고 말해주길 기대합니다. 투자는 멀고 사랑은 늘 가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