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담에 ‘무병단명(無病短命), 일병장수(一病長壽)’란 말이 있다. 건강한 사람은 강골(强骨)체질을 과신하다가 무절제한 생활로 단명(短命)하는 경우가 많고, 잔병치레가 많은 약골(弱骨)은 늘 건강에 조심하기 때문에 의외로 오래 산다는 얘기다. ‘골골 팔십(八十)’이란 말도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2018년 생명표’를 보면 한국인의 상황이 영락없는 ‘골골 팔십’이다. 지난해 증가세가 멈추긴 했지만 기대수명(해당 연도 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은 82.7년으로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0.7년)보다 2년 길다.
아프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매년 줄고 있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12년 65.7년에서 지난해 64.4년으로 단축됐다. 기대수명 대비 건강한 기간의 비율도 2012년 81.3%에서 지난해 77.9%로 뚝 떨어졌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들은 기대수명의 22.1%인 18.3년을 ‘골골거리며’ 산다는 얘기다.
하지만 통계 수치로 보이는 한국인의 건강과 실제 상태는 차이가 적지 않다. 한국인은 자살을 제외하고는 암, 치매, 순환기계통 질환 등 거의 모든 사망원인 지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축에 속한다. 기대수명도 길어 사실상 ‘유병(有病) 장수국’보다는 ‘무병(無病) 장수국’에 더 가깝다.
통계와 현실의 불합치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고혈압, 당뇨 등 약물치료와 적당한 운동으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값싸고 질 좋은 의료시스템과 ‘의료쇼핑’으로 나타나는 유별난 ‘건강 염려증’이 있다는 게 의료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인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6.6회로 OECD 평균의 2배를 넘는다.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한국(29.5%)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양인들의 80%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인이 장수하는 비결의 하나로 ‘건강 염려증’을 꼽았을 정도다.
‘건강 염려증’은 도가 지나치면 ‘건강 강박증’이란 정신질환으로 발전한다. 평소에 건강을 살피는 긍정적인 ‘건강 염려증’은 ‘골골 팔십’이 아니라 ‘팔팔 팔십’의 지름길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