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증시에서 23개 상장사가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시총 1조 클럽’에서 탈락했다. 매수세가 대형주 가운데서도 삼성전자 등 소수 종목에 집중되면서 상당수 대형주가 부진한 데 따른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우선주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신규 상장사 등을 제외한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1조원을 웃도는 상장사는 180개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총 1238조7580억원으로, 작년 마지막 거래일(12월 28일)에 비해 15조2067억원 증가했다. 시총 1조 클럽은 한국보다 증시 규모가 큰 미국에서도 ‘빌리언 달러 클럽’으로 특별하게 지칭될 만큼 상장사들엔 큰 의미를 지닌다.
1조 클럽의 총 시가총액은 증가했지만, 회원 수는 줄었다. 올 들어 13개 상장사가 시총 1조원을 돌파하는 동안 23개는 1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제약·바이오업종에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8개 종목 시총이 1조원 아래로 내려왔다.
한때 코스닥 ‘대장주’였던 신라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간암치료제 펙사벡 임상3상 중단 권고를 받으면서 10조원에 달했던 시총이 9379억원까지 감소했다. ‘인보사 사태’가 터진 코오롱티슈진과 신라젠 두 종목에서 올해 증발한 시총은 총 6조2979억원으로, 같은 기간 1조 클럽 신규 가입 종목들의 시총 증가분(7조642억원)과 맞먹는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의 기대를 받아온 대형 바이오주가 기대에 부응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투자심리가 냉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엔터테인먼트업종에서도 1조 클럽 탈락자가 속출했다. 엔터주 대장주를 놓고 경쟁하던 에스엠과 JYP엔터테인먼트는 올 들어 주가가 각각 29.35%, 29.84% 하락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엔터주는 올해 내내 ‘승리 게이트’와 한·일관계 악화 등을 거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며 “엔터주가 이전만큼 높은 프리미엄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와 엔터주가 비운 자리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차지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산 소부장 기업들이 주목받으면서 대거 수혜를 입었다. 원익IPS, 솔브레인, 이오테크닉스 세 종목은 올해 시총이 총 2조1188억원 증가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 번 불이 붙은 반도체 소재 국산화는 향후 한·일관계 흐름과 무관하게 진행될 전망”이라며 “내년에는 반도체 경기도 회복 국면에 진입하는 만큼 관련 기업들에 시장의 기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한 아시아나항공과 지주사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효성 등도 ‘몸집’을 불렸다. 김학균 센터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코스피지수는 1700 수준에 불과하다”며 “내년에는 2차전지나 자동차같이 올해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여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커진 대형주들이 기저효과를 바탕으로 도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