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도 상응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위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김정은을 2년 만에 ‘로켓맨’이라 부르며 대북 무력 사용 가능성을 경고한 직후 맞대응한 것이다.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미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며 ‘강 대 강’ 대치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17년 미·북 말폭탄’ 재연되나
북한에서 대미 담화에 군 수뇌급인 총참모장이 직접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정천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해 “우리 무력의 최고사령관(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소식을 매우 불쾌하게 접했다”며 “이러한 위세와 허세적인 발언은 자칫 상대방의 심기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금 이 시각 조·미(북·미) 관계는 정전상태에 있으며 그 어떤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서도 순간에 전면적인 무력충돌로 넘어가게 돼 있다”고 강변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좋은 관계’를 강조하며 미·북 관계를 현상 유지하겠다는 뜻은 나타냈다. 박정천은 “그나마 조·미 사이의 물리적 격돌을 저지시키는 유일한 담보가 조·미 수뇌 사이의 친분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갈등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각에선 2017년 9월 유엔총회 당시 두 사람 간 ‘말폭탄 주고받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은 국무위원장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성명을 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반박하려는 북한 내부의 충성 경쟁으로 보인다”며 “충분히 예상됐던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이라 지칭하며 나름 수위 조절은 했지만 미·북 대화 연내 재개는 어려울 듯하다”고 덧붙였다.
49일 만에 백두산 간 김정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4일 김정은이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월 16일 이후 49일 만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엔 미국에 제시했던 ‘연말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을 향해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사실상 공표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번 백두산 방문엔 박정천을 포함해 군종 사령관, 군단장 등 군 인사가 대거 수행했다. 부인 이설주도 동행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관련된 곳을 주로 시찰했다. 김정일이 태어난 장소로 홍보되는 백두산 밀영을 비롯한 각종 사적지, 답사 숙영소에 갔다. 김정은은 이번 시찰에 대해 “제국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봉쇄 압박 책동 속에서 우리 혁명의 현 정세와 환경, 필수적인 요구에 맞게 백두의 굴함 없는 혁명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혁명전통 교양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이달 하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전원회의는 4월 10일 제4차 회의 이후 8개월여 만에 열린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길’의 구체적 방향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