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인의 정자로 인공수정한 자녀도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된다”는 판결 보도가 있었다. 이 요약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판결의 의미와 무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남편이 무정자증인 부부가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첫째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했고, 인공수정 없이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다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했다. 부부는 함께 두 아이를 기르다 이혼에 이르렀다. 남편은 두 아이 모두 자신과 혈연관계가 없다며 2013년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은 일정한 가치와 정책목표를 갖고 제도를 설계한다. 민법 제844조의 친생추정 규정도 마찬가지다. 부인이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이 추정을 벗어나려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생부인(否認)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자녀의 출생 후 친생자임을 승인한 자는 다시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다.
다만 친생추정 원칙의 예외에 해당할 때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친생부인 소송과는 다른 것이다)을 제기할 수 있다.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 해외에 나가 있는 등 부인이 남편의 자녀를 포태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198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반대의견도 있음). 그동안 과학기술이 발전해 유전자 검사는 친자관계를 99% 이상의 확률로 판정한다. ‘외관상 명백한 사정’보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더 확실한 것 아닌가 의문이 들 수 있다.
국회가 사회의 변화에 부합하는 법을 내놓지 않고 있을 때 법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원은 법률의 문언이나 정책목표에 더 기속되는 것일까 아니면 과학적으로 인정된 사실에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 위 판결의 다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자녀의 복리는 친자관계의 성립과 유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혼인 중의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게 당연히 친생추정이 적용되고,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사정만으로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거나 그 예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인공수정에 동의했고 출생 후 이의 없이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해 20년 이상 동거하며 실질적 친자관계를 형성해온 것은 친생자 승인으로 볼 수 있다.
이 판결에는 여러 별개의견, 반대의견, 보충의견이 있다. 지면관계상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지만 모두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견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만 소개한다. 인공수정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거 ‘운명의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바꿨다. 인공수정을 통한 자녀의 출생을 희망한 남편과 부인의 ‘의사’에 대한 법적 평가와 그 책임 한계를 논의할 시점이다.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하며, 생물학적 친자관계 외에 사회적 친자관계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미국의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 한 미국 남성이 가이아나에서 현지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고 그 후 딸이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남성은 그 아이를 딸처럼 취급해 여러 번 만났고 아버지로서 책임지겠다는 말도 했으며 생명보험 수익자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 여성과 딸이 뉴욕 가정법원에 인지 및 부양청구를 하자 남성은 DNA 검사를 요구했고, 그 결과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법원은 아이와 정서적 관계가 확립된 것으로 보아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에 따라 DNA 검사 결과와 무관하게 딸에 대해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Shondel J v Mark D).
이 판결에도 소수의견이 있으며 많은 찬반 논의가 있다. 생물학적인 아버지라며 친자관계를 주장하는 것이 아이가 현재 아버지로 삼고 있는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파탄시켜 아이의 최선의 이익에 해가 된다며 배척한 사례도 있다(Fidel A v Sharon N). 동성혼과 관련된 사례도 상당히 쌓여 있다.
혼인제도의 변화, 인공수정을 포함한 출산 방식의 다양화 등 사회문화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새로운 윤리적 법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대안에 대한 합의 및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