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 수사’를 촉발한 첩보의 제보자가 김 전 시장 경쟁 후보였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최측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제보를 바탕으로 문건을 정리한 뒤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한 것이라고 4일 밝혔다.
제보자로 알려진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사진)은 제보 당시 퇴직 공무원이었고, 지방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 후보 캠프에서 정책팀장을 맡았다. 송 부시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 “정부에서 여러 가지 동향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를 파악해서 알려줬을 뿐”이라고 밝혔다. 제보자가 여당 후보 측근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靑 “숨진 수사관 관여 안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2017년 10월께 당시 민정비서관실 소속 A행정관이 김 전 시장 및 측근에 대한 비리 의혹을 제보받아 백 전 비서관에게 보고했다”며 “고인이 된 수사관은 문건 작성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고 대변인에 따르면 A행정관은 지인인 제보자가 보내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복사해 이메일로 전송한 후 출력했다. 이후 제보 내용을 보고 형식으로 일부 편집해 정리했다. 다만 백 전 비서관은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당시 접수한 정보가 김 전 시장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비서실장과 동생에 관한 것이고, 이를 경찰로 바로 이첩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 “직권남용 명확해져”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다른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령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무원은 청와대의 비위 감찰 대상이 아닌 데다 첩보를 원본 그대로 이첩하지 않고 요약 정리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사법학회 관계자는 “도지사 시장 군수 등 선출직 공무원 및 그 비서실장, 혹은 민간인에 대한 비위 의혹은 청와대 어느 부서도 취급할 수 없도록 대통령령에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대통령령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고위공직자와 대통령의 친족 및 측근, 공공기관 임원 등에 대해서만 청와대가 정보를 취급하고 감찰하도록 규정했다.
청와대 해명대로 행정관이 SNS로 수집한 제보를 바탕으로 문서를 만든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청와대가 다루지 말아야 할 정보가 제보됐다면 ‘원본 그대로’ 관계기관에 보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취급하지 말아야 할 김 전 시장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올렸다는 점이 문제”라며 “단순히 요약 정리하는 것도 법적으로는 문서 작성 행위가 된다”고 설명했다.
백 전 비서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정비서관실에서 수집돼 가공된 정보를 공직자 감찰을 담당하는 반부패비서관실에 넘겨 경찰로 이첩시켰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청와대가 취급하지 말아야 할 정보를 다시 가공해 반부패비서관실에 넘겼다는 점에서 직권남용 범죄가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민정비서관실에서 단순 이첩받은 사건과 반부패비서관실에서 자료로 전달받은 사건의 무게는 경찰의 입장에서 천지차이”라며 “관련 정보를 받은 경찰은 수사를 하면서 큰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박재원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