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특허 공룡’ 퀄컴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약 2년10개월에 걸쳐 벌인 소송전에서 공정위가 이겼다. 법원은 퀄컴의 특허권 남용 행위 중 일부는 위법한 것이 아니라고 봤으나, 결론적으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1조311억원을 모두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휴대폰 제조사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공정위는 2016년 12월 “모뎀칩셋·특허권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퀄컴인코포레이티드와 계열사인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 등 3개사에 사상 최대 규모인 과징금 1조311억원과 함께 퀄컴의 특허권 제공 방식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퀄컴은 이에 반발해 2017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공정거래 사건은 고등법원-대법원 2심제로 운용된다. 이번 소송에는 국내 대형 로펌 일곱 곳이 참여해 사건 기록이 7만3000쪽을 넘겼다. 올 8월 최종 변론을 마친 뒤 판결문 작성에 4개월이 걸렸다.
약 2년10개월 동안 17회 변론을 거친 결과는 사실상 공정위의 ‘판정승’이다. 퀄컴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 자사의 특허권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퀄컴의) 특허공격 위험으로 인해 경쟁사들의 비용이 상승했다”며 “특허권을 사용하려는 경쟁사들에 판매처 제한, 영업정보 보고 등과 같은 부당한 조건을 요구해 사업활동을 방해하고, 시장봉쇄 효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모뎀칩셋을 필요로 하는 휴대폰 제조사들에 계열사의 다른 특허권을 연계해 판매한 행위에 대해서도 “퀄컴이 해당 휴대폰 제조사들에 일방적으로 모뎀칩셋 공급을 중단하면 휴대폰 사업 자체가 중단될 위험이 있다”고 강제성을 인정했다.
다만 휴대폰 제조사에 특허권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다른 특허를 끼워 팔고 휴대폰 가격에 비례한 로열티를 받거나 각사 고유의 특허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에 대해선 “휴대폰 제조사에도 이익인 경우가 있다”며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선고 직후 공정위는 “법원이 퀄컴과 같은 표준필수특허(SEP)권자의 ‘프랜드(FRAND: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특허기술사용조건) 확약’ 의무를 재확인하고,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사업모델이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국내업계, 퀄컴 특허남용에도 반발 못해
국내 휴대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두 이번 판결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퀄컴이 이동통신용 모뎀칩의 주요 공급사여서 의견을 내놓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휴대폰업계는 퀄컴의 ‘특허 남용’에도 공개적으로 반발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이 칩셋을 공급하지 않으면 휴대폰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국내는 물론 미국 휴대폰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도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각국 당국이 시정 조치에 나서자 퀄컴은 계약조건을 완화했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도 퀄컴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특허 로열티를 받고 시장경쟁을 해치고 있다’며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
2016년 12월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퀄컴과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다시 맺었다. LG전자도 올해 8월 재계약했다. 이전까지 퀄컴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에서 스마트폰 값의 3~5%에 이르는 특허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은 모바일 칩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이렇다 할 경쟁사가 없다. 인텔은 올 들어 모바일 칩셋 사업을 포기했고, 대만 미디어텍은 아직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경쟁사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퀄컴이 독점적인 지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연수/남정민/전설리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