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동방항공, QIB로 3000억 모았다

입력 2019-12-04 17:33
수정 2019-12-05 00:48
▶마켓인사이트 12월 4일 오후 2시20분

중국 국적항공사인 동방항공이 사상 최대 아리랑본드(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발행한 원화 채권) 투자 수요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동방항공은 외국 기업의 국내 채권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적격기관투자가제도(QIB)를 처음 활용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동방항공의 발행 성공을 계기로 QIB를 활용한 외국 기업의 국내 채권 발행이 점차 확대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7년 만에 열린 QIB 적용 발행

4일 IB업계에 따르면 동방항공은 6일 발행 예정인 3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원화 채권(신용등급 AA-) 투자자 모집을 완료했다. 아리랑본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발행 금리는 연 2.4% 수준으로 잠정 결정됐다. KB증권이 발행 주관을 맡았다.

동방항공은 이번 아리랑본드를 발행하며 2012년 국내에 도입된 QIB 제도를 처음 활용했다. QIB는 외국 기업이 증권신고서 등 각종 채권 발행 관련 서류를 영문으로 제출하고 간소한 심사만 받으면 전문 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채권 수요를 모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글로 발행 관련 서류를 내야 하는 것을 면제해줌으로써 외국 기업의 국내 채권 발행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박성원 KB증권 IB1총괄본부장(부사장)은 “이번 동방항공의 아리랑본드 발행 성공으로 외국 기업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QIB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열렸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모 사채 관련 규제 풀어줘야”

하지만 외국 기업의 국내 채권 발행이 얼마나 증가할지는 미지수란 게 IB업계의 분석이다. QIB를 통한 외국 기업의 채권 발행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의 산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은 2016년 증권사가 QIB를 통해 발행된 채권 인수를 늘리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증권사가 QIB를 통해 발행된 채권을 인수하면 재무건전성 지표인 순자본비율(NCR) 산정 과정에서 ‘금리위험액’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이를 통해 증권사는 QIB 활용 채권을 ‘자본 차감 항목’에서 제외해 자산건전성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QIB 방식으로 발행됐더라도 기관투자가가 공모 아닌 사모 회사채를 인수하는 경우 이를 ‘유가증권’이 아니라 ‘기업 대출’로 회계처리하도록 한 규제가 외국 기업의 국내 채권 발행 확대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 대출로 분류되면 기관들은 충당금을 쌓아야 해서다. 외국 기업이 QIB 방식으로 사모 회사채를 발행하려 할 때 NCR 혜택을 보는 증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관이 인수를 꺼리는 이유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모 채권을 유가증권으로 인정하는 유권해석만 내려줘도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외국 기업이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규제를 풀어 급성장한 대만 포모사본드(외국 기업이 대만에서 발행하는 외화 채권)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만 정부가 2013년 외국 기업의 위안화 채권 발행을 허용하고 2014년 현지 보험사의 해외 투자 한도를 45%로 제한하는 규제를 없애자 포모사본드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13년 18억달러에 불과하던 포모사본드 발행 규모는 지난해 340억달러로 불어났다. 올해 10월 말까지도 208억달러가 발행됐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