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반의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2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올해 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이 저물가를 유발하고, 이에 따른 소비·투자 부진이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3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잠정치)이 0.4%로 집계됐다고 3일 발표했다. 지난 10월 내놓은 속보치와 같은 수치다. 올해 연간 성장률이 2%대를 기록하려면 4분기에 0.9% 이상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투자, 수출 등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2% 성장은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3분기 GDP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1.6% 하락했다. 분기 기준으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2.7%) 후 최저치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소비자물가와 수출입물가 등을 아우르는 물가지표다.
숀 로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S&P·나이스신용평가 공동 미디어 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라고 했다. 그는 “임금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을 더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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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韓, 경기 바닥 쳤지만 회복은 더뎌"
S&P·나이스신용평가 간담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이라는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의 경고가 나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한국의 나이스신용평가가 ‘저성장과 저금리’를 주제로 3일 연 미디어 간담회에서다.
숀 로치 S&P 아태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년 한국의 경제 회복세가 더딜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으로 글로벌 무역분쟁과 디플레이션을 꼽았다. 그는 “좋은 소식은 경기가 바닥을 지난 것 같다는 점”이라면서도 “나쁜 소식은 재정지출 확대에도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고, 금리는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투자도 부진한 만큼 디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디플레이션 상황에 맞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대까지 낮춰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이 통화완화 효과를 내려면 정책금리를 더 낮춰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며 “한은이 한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한은은 지난 10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연 1.25%로 0.25%포인트 내린 뒤 지난달 29일에는 동결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에 따른 기업 경영환경 악화와 투자 부진도 성장률과 물가를 짓누르는 요인으로 꼽았다. S&P는 올해 들어서만 이마트와 KCC 등 국내 비금융 일반기업 10곳의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반대로 상향 조정한 기업은 두산밥캣 한 곳뿐이다.
한국의 고용 상황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신규 고용 대부분이 기간제와 시간제 근로인 탓에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올해 성장률은 미·중 갈등 완화 전망과 재정지출 확대 등을 반영해 1.9%로 예상했다. 지난 10월 1.8%로 0.2%포인트 낮췄던 전망치를 다시 0.1%포인트 올렸다.
이날 S&P와 함께 행사를 연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 산업이 대부분 어려운 경영 환경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40개 산업의 내년 사업환경과 실적 방향을 전망하면서 ‘실적 개선을 예상하는 업종’ 또는 ‘사업환경이 유리한 업종’은 전무(全無)하다고 밝혔다. 소매유통·디스플레이·석유화학·건설·할부리스 등 7개 업종은 사업환경이 나빠지는 데다 실적까지 떨어지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및 가구구조 변화에 따라 소매용품 업종 실적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건설업과 부동산 신탁사업 등도 불리한 사업환경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미·중 통상분쟁으로 석유화학 사업 역시 수출 부진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저금리 기조로 인해 금융업 수익성을 어둡게 봤다.
최우석 나이스신용평가 평가본부장은 “내년에는 건설투자와 민간소비 부진 등 여파로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 압력도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김익환/이태호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