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3배 넘게 키운 허창수 회장 "지금이 새 활로 찾을 적기"

입력 2019-12-03 17:13
수정 2019-12-04 00:50
3일 사임을 발표한 허창수 GS그룹 회장(71)은 ‘재계 신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예의 바르고 소탈하다. 10여 년째 살고 있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 인근 빵가게에 혼자 들러 식빵을 사가곤 한다. 집무실(역삼동 GS타워)에서 가까운 곳에 약속이 있으면 지하철을 탄다.

그는 이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우리도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로 판단했다”고 사임 배경을 설명했다.

허 회장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고(故)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77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했다. LG상사 전무와 LG화학 부사장, LG전선·LG건설 회장을 지냈다. 2004년 LG그룹과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GS그룹을 출범시키며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허 회장의 경영능력은 실적에서 확인된다. GS그룹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 68조원, 자산 63조원의 재계 8위(자산 기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룹 출범 첫해인 2004년 매출 23조원, 자산 18조원과 비교하면 회사 덩치가 세 배 넘게 커졌다. 내수에 치우쳤던 사업 구조도 다변화했다. GS그룹의 지난해 수출액은 36조8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4%를 차지했다.

허 회장은 에너지·유통·건설을 그룹의 3대 핵심 축으로 삼으면서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2005년 LG상사가 보유한 LG에너지를 인수해 민자 발전업체 GS EPS를 출범시켰다. 2009년엔 (주)쌍용 지분을 인수해 종합상사인 GS글로벌을 탄생시켰다. 2013년엔 STX에너지(현 GS E&R)를 사들여 발전사업을 강화했다.

무모한 M&A는 경계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가격 조건이 맞지 않자 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당시 일각에선 “다 잡은 토끼를 놓쳤다”고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허 회장의 탁월한 결단”이라는 재평가가 나왔다.

허 회장은 GS그룹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은 그대로 맡는다. 그는 2011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했다.

허 회장은 이날 전경련 주최로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산둥성 경제통상 협력 교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은퇴는 옛날부터 생각했다”며 “지금 기분은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