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사진)은 2015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곧바로 영업현장부터 점검했다. 설계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입견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대졸 사원처럼 매끈한 언어로 말하진 않지만 현장에서 다져진 에너지가 대단했다”며 “이들을 잘 지원하면 훌륭한 경영진으로 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설계사 육성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조직체계부터 손을 댔다. ‘영업본부-지역단-점포’로 이어지는 3단계 영업 관리 조직에서 본부 및 지역단을 없앴다. 본사와 영업점포가 직결되는 구조로 슬림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절감된 영업관리 비용은 보험료 인하 및 수수료 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영업점포 관리는 모두 설계사에게 맡겼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의 경영철학에도 맞는 전략이었다. “학벌은 보지 않는다. 회사에 기여한 만큼 철저하게 성과와 보상을 책정하는 게 우리의 방식”이라는 조 회장의 말을 직원들에게 수시로 전하기도 했다.
메리츠화재의 공격적인 영업은 보수적인 보험업계의 견제를 받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설계사의 높은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부실영업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소비자가 쏟아질 것이라는 악의적인 소문도 돈다.
김 부회장은 이에 대해 “그런 말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아무도 대답을 못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부회장은 업계의 견제를 “불행처럼 찾아온 축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소문이 메리츠화재의 영업에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결론이 달라진다고 했다. 소비자보호 등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해석이다. 물론 불행이 늘 축복이 되진 않는다. 김 부회장이 “모든 서류를 1층 로비에 흩어놓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어도 문제 없게끔 일을 하라”고 늘 강조하는 이유다. 김 부회장은 “맥도날드처럼 햄버거 패티를 굽다가 CEO가 되는 사례가 메리츠화재에서도 언젠가 나올 것”이라며 “무난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영업으로는 판을 뒤집을 수 없다”고 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