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비즈니스북스)를 출간한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지난달 28일 한국을 찾았다. 그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적인 투자자로 꼽힌다.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설립한 헤지펀드 퀀텀펀드는 10년간 42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의 부상 등을 예측해 유명해졌다. 책을 통해 북한의 경제 개방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주목한 그는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2020년 세계 경제 지표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책에서 조만간 세계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위기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에서부터 시작된다. 라트비아,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부채 증가로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팽창은 역사상 가장 길게 이어지고 있다. 위기가 오면 충격이 더 클 것이다. 2007년 아이슬란드의 파산처럼 어떤 것이 트리거(방아쇠)가 될지 알 수 없다. 위기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은 ‘올해가 바닥’이라며 내년엔 좋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IMF의 예측은 맞은 적이 없다. 그곳에서 낸 연간보고서를 보면 ‘매년 이렇게 틀렸구나’란 걸 알 수 있다. 권위 있는 기관이지만 틀린다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비난받지 않는다. IMF에서 그렇게 발표했다니, 내 전망에 더 확신이 든다.”
▷현 시점에서 어떤 투자전략을 짜야 하나.
“나는 농산물과 금과 은에 투자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금에 투자하는 게 맞느냐고 하면 경제학과 교수들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겁을 먹으면 앞다퉈 금과 은을 사려고 한다. 그래서 투자하는 것이다. 농업 분야는 수십 년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투자 기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다. 신중하게, 자신이 잘 아는 것에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 경제신문을 열심히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국가별로는 어떤 곳이 유망한 시장인가.
“어제도 한 러시아 기업의 주식을 좀 샀다. 러시아는 정부의 경제개발 의지가 크고 재정도 안정적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도 좋은 투자처다. 한때 관심이 높았던 일본 주식은 전량 매도했다. 생산 인구는 줄고 폐쇄적인 체제인 데다 국가 부채가 너무 많아서다. 미국은 역사적 고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힘든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좋은 성과를 내왔다. 다만 이젠 그 속도가 줄고 있는 것뿐이다. 부채를 줄이려면 상환이 우선이니 경기는 둔화할 것이다. 하지만 19세기를 주름잡았던 영국, 20세기를 제패한 미국도 위기는 겪었다. 침체는 경험하겠지만 중국이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국가가 될 것임은 명백하다.”
▷책에서 ‘북한’이라는 카드가 없다면 한국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한국은 출산율이 낮고 자살률은 높다. 젊은이들은 공무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민자를 원치 않고 규제도 심하다. 사회가 건강하고 경제가 역동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지만 더 큰 요인이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나.
“조만간 양국에서 사람들이 듣기 좋은 소식을 발표할 것이다. 그 소식 덕에 한동안은 괜찮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더 심각한 무역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독일 등을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무역전쟁은 누구에게도 안 좋다.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역사가 그것을 얘기해주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는 곧 ‘자유’라고 했다. 일찌감치 자유를 얻었음에도 계속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 자동차나 비행기, 집이나 요트를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투자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돈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파악한다. 그게 재밌다. 투자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윤정현/강영연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