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쟁엔 '치열', 경제는 '대충'…이런 국회, 더는 안 된다

입력 2019-11-29 17:44
수정 2019-11-30 00:14
20대 국회가 막판까지 국민에게 실망과 정치혐오만 안겨주고 있다. 여야가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법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다 어제 본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철회와 ‘친문 게이트’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꺼내들자,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대신 한국당 규탄대회로 선회했다. 이런 대치가 이어질 경우 꼭 필요한 법안 처리를 기약할 수 없다. 내달 10일 정기국회 폐회까지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자동폐기 가능성이 커진다.

정쟁 속에 경제활성화 법안들까지 뒷전으로 밀어버린 국회는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관련 상임위원회마다 어설프게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수정·변질·보류되는 게 다반사인데 이젠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이런 식이면 올해도 막판에 수백 개 법안을 올려 어떻게 고쳐졌는지도 알지 못한 채 땡처리 하듯 통과시키거나 무더기로 폐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게 뻔하다. 국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빅데이터산업 육성을 위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이다. 여야가 이번에는 꼭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정무위원회를 넘어서자 법제사법위가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또다시 제동을 걸었다. 정보통신망법은 관련 없는 ‘실시간 검색어 조작 방지’ 법안과 함께 처리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티격태격하느라 상임위를 넘지도 못했다. 법안 통과만 학수고대하는 기업들로선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7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이번에도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획재정위에서 국가재정법 등 쟁점 법안에 밀려 논의조차 못하고 있어서다. 이 법은 의료 관광 유통 등 서비스산업 활성화에 필수인데도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소위 ‘의료민영화’라는 억지 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또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기 위한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도 관련 상임위에서 사실상 여당이 보류시켰다. 경제계에서는 “도대체 국회의 존재이유가 뭐냐”는 비난이 나온다.

경제상황이 엄중해 쟁점이 없는 경제활성화 법안들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정부·여당이 다짐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하지만 제대로 처리된 게 거의 없다. 여당은 야당을 탓하지만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법안 처리는 미루는 여야가 내년 513조5000억원의 초슈퍼예산에 대해선 밀실에서 어떤 흥정과 담합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재정 퍼주기를 막겠다던 야당들조차 지역구 예산 늘리기에 혈안이니, 포퓰리즘 예산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20대 국회는 생산성 면에서 ‘최악’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법안처리율이 30%에 불과해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들은 19대 국회(42.8%)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그 책임을 물어도 시원치 않을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에 또다시 출마해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할 것이다. 정쟁에는 치열하고 경제 문제는 대충 넘기는 이런 국회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될 것이다. 정치판을 확 물갈이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