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당구의 미래' 이미래 "큐만 잡으면 눈빛 달라진대요"

입력 2019-11-29 17:46
수정 2019-11-30 00:17
“친구들은 저더러 손이 많이 가는 멍청이래요. 하하.”

여자프로당구(LPBA)투어 이미래(23·사진)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함박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로 데뷔 전부터 ‘LPBA의 미래’로 꼽혀온 그다. 앞서 끝난 투어 5차 대회 메디힐LPB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잠재력을 꽃피웠다. 29일 서울 강남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에서 만난 이미래는 “평소 잡생각이 많아 덜렁대는 편”이라며 “하지만 몇 년간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경기에 들어가면 눈빛이 확 달라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파이널 세트에서야 승부가 갈린 접전이었다. 그는 결승전에서 김갑선을 세트스코어 3-2로 겨우 꺾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 ‘삼촌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미래지만, 그날만큼은 맘 놓고 펑펑 울었다. 이미래는 “소감을 말하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며 “당구를 내게 알려준 것도, 당구가 싫어지게 한 것도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너무나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고 돌아봤다.

아버지 이학표 씨(63)는 그의 스승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이씨는 3남매 중 막내인 이미래에게 초등학생 때부터 취미로 4구를 시켰고 소질을 보이자 3쿠션도 가르쳤다. 이미래는 이씨가 퇴직 후 차린 당구장에서 연습하며 실력을 키웠다. 코치는 항상 아버지였다.

“아빠를 당구로 처음 이긴 건 중학교 때였어요. 한마디로 ‘청출어람’이랄까. 그래도 당구가 재밌진 않았어요. 그때부터 아빠에게 배운 당구 지식을 응용해 ‘독학’했는데, 나만의 길이 보이더니 당구가 갑자기 재밌어지더라고요. 스스로 원해서 당구를 하니까 실력이 빨리 늘던데요? 하하.”

이미래는 프로 데뷔 이후 아버지의 가르침이 유독 더 생각난다고 했다. 당구도 사람 성향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확연히 갈리는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방어 당구’를 고집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아버지가 제게 해준 말씀이 있어요. 권투 선수가 가드를 내리면 코치에게도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고. 그만큼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방어라는 거죠. 수비가 돼야 공격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들어 더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선수로서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자질이랄까.”

그는 3개월 전부터 근력 운동도 시작했다. 집중력 싸움인 줄로만 알았던 프로당구가 결국엔 ‘체력전’이라는 걸 깨우쳤기 때문이다. 첫 승에 안주하지 않고 우승을 추가하는 게 그의 목표다.

“언니 이름이 한글인 나래예요. 제 이름을 지을 때 ‘가나다’ 순으로 다래로 지으실 뻔했대요. 그러다가 ‘미’까지 와서 미래가 된 거죠. 이름 덕분인지 많은 분이 제게 ‘여자 당구의 미래’라며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팬들의 바람처럼 이름 따라 잘됐으면 좋겠어요. ‘밝은 미래’를 위해 2승, 3승을 목표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