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들의 문화적 공헌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 미국 문화의 한 축인 음악과 춤을 규정짓는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흑인 공동체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헌은 전문적이지 않고 여가를 위한 것이라고 취급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반면 백인 기업가들은 이를 이용해 영리 활동을 활발히 수행했다. 미국뮤지션연맹이 1896년 창설돼 아티스트들의 권리를 보호했지만, 흑인들의 지식재산권이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오늘날 사람들이 데이터를 제공하는 행위가 흑인들의 문화적 공헌과 닮아 있다.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데이터 제공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 제공에 대한 보상
인터넷의 시작은 정부, 군대, 학계의 협업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상업적이거나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 동기나 보상을 제공하기보다는 참여의 장애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기업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은 정보는 공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사용자들로 하여금 온라인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벤처 기업 역시 사업의 수익모형을 확립하고 시작하기보다 불확실하더라도 고객들을 빠르게 확보해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사업에 집중했다. 온라인 음악 공유 프로그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냅스터’ 같은 법적 경계가 불투명한 서비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지식재산권의 확립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문을 닫지 않기 위해 대안을 찾아야만 했고, 온라인 검색플랫폼인 구글은 모아놓은 고객 정보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찾았다. 검색 히스토리를 통해 다른 어떤 전통 광고 매체보다 정확한 광고를 제공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페이스북도, 유튜브도 이를 따랐다. 고객들의 데이터가 핵심 자산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데이터에 대한 사용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료 서비스라는 이유로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가상현실의 아버지라 불리는 ‘재런 레니어’는 이런 무료 서비스가 데이터 제공의 대가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데이터 제공자에게 적절한 데이터 공급의 유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질적으로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시카고 법률대 교수인 에릭 포즈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연구원인 글렌 웨일은 그들의 책 「래디컬 마켓」에서 페이스북의 사례를 통해 데이터의 불완전함을 설명한다. 페이스북의 경우 업로드하는 사진에 붙은 태그 데이터가 인공지능 알고리즘 구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태그를 달지 않는 탓에 단기 노동자를 고용해 사진에 태그를 다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들이 사진을 올리는 사람만큼 사진을 잘 이해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이들은 페이스북이 만약 데이터 제공자에게 알고리즘의 방식을 인식시키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한다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
재런 래니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아무리 대체하더라도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술적 속성을 지적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통해 훈련되고 학습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훈련된 인공지능은 제조현장에서 생산활동에 기여하기 때문에 에릭 포즈너와 글렌 웨일은 데이터 공급이 노동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이를 ‘노동으로서의 데이터(data as a labor)’라고 부른다. 데이터를 생산요소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데이터의 공급을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가짜 실업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은 사람들이 더 이상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급하는 값진 데이터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여흥의 부산물로 취급받는 결과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와 무관하게 노동으로서의 데이터 공급이 노동으로 인정받는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고, 이는 사람들에게 보조 수입원이 될 수 있다.
플랫폼 이용자 역할의 변화
「래디컬 마켓」의 저자들은 데이터 공급에 대한 보상은 플랫폼 기업의 이익의 분배 문제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분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격이 책정되어야 하고, 가격이 책정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기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한편 이익이 분배되더라도 그 몫은 당장에 크지 않다. 구글과 페이스북 시가총액 전체를 이를 사용하는 전 세계 인구 수로 나눈다는 단순 가정을 해봐도 그 금액이 크지 않다. 하지만 금액의 크기와 무관하게 이러한 분배는 디지털 효율성과 소비자 편익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소비자가 플랫폼 서비스의 수동적 사용자가 아니라 가치 창출의 역동적인 참여자로서 재정의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극대화된 어느 시점에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포인트
IT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데이터는
새로운 생산요소의 하나
데이터 가치를 적절히
측정해야 데이터 공급 늘고
생산에도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