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는 유대인이어서 대통령 어렵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입력 2019-11-29 08:24
수정 2019-11-29 08:45
미·중 1단계 무역합의를 제외하면, 월가의 가장 큰 걱정꺼리는 내년 대선입니다. 민주당에서 급진적 정책을 부르짖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대선 후보가 되고, 혹시 당선이라도 되면 증시가 크게 하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레온 쿠퍼맨, 폴 튜더 존스, 스티브 코헨 등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들은 워런을 집중 견제하고 있습니다.

최근 고무적인 일이 나타났습니다. 피트 부티직 사우스벤드 시장의 지지율이 높아지며 워런 의원을 앞설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이 민주당 대선 경쟁에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현재 후보들로선 최종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승산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렇다면 블룸버그가, 혹은 부티직이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를 최근 만났습니다. 그는 “블룸버그는 유대인이어서 안되고, 부티직은 동성연애자여서 안될 것”이라고 잘라말했습니다. 이 분은 인종주의자나 반동성연애자가 아닙니다. 미 정세를 분석해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블룸버그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에 1400만명쯤 되는 데 그중 절반 가량인 600만명이 미국에 삽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150만명이 뉴욕에, 50만명이 LA에 모여삽니다.

뉴욕은 정말 유대인의 도시입니다. 맨해튼 건물주의 3분의 2가 유대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블룸버그는 뉴욕시장을 3선이나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의 인기는 별로 없습니다. 미국에선 여전히 작년에도 유대교 사당인 시나고그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이 살아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내 유대인들이 블룸버그를 도울 지도 의문입니다.

유대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유대인들은 뒤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현명하지, 앞에서 설치다가 주류사회의 미움을 받게되면 박해로 이어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머릿수도 적고, 미움을 받는 유대인이 정치권력까지 휘두르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겁니다. 독일에서 발생한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 블룸버그가 대선 경쟁 참여를 발표한 뒤 민주당의 무슬림 의원인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은 지난 9일 의미심장한 트윗을 날렸습니다. 억만장자 레온 쿠퍼맨이 블룸버그를 지지했다는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나는 궁금하다”라고 한 것입니다.

쿠퍼맨도 유대인이죠. 블룸버그가 미국보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위해 뛰려는 것이란 의심을 제기한 트윗이란 비판이 나왔습니다. 또 유명 TV쇼인 ‘세러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도 한 코미디언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곧 언론사를 가진 유대인 억만장자에 대해 음모론을 내놓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블룸버그는 또 뉴욕시 행정은 잘 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기는 그에 비해 높지 않았습니다. 완벽주의자 답게 각종 규제와 간섭을 심하게 했다는 겁니다.

77세란 고령도 문제도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이슈에서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본인이 89% 지분을 가진 블룸버그통신의 중국 의존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 문제를 강경하게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죠.

이 때문인지, 블룸버그의 인기는 생각보다 낮습니다. CNN이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3% 지지를 받는데 그쳤습니다.


일부에선 이런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블룸버그가 대선 경쟁에 뛰어든 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트럼프의 낙선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상대도 하지않았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공약이나 업적을 알리는 광고보다, 트럼프에 대한 비난 광고를 전국에 퍼부어 트럼프를 낙선시키려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11위 부자인 블룸버그의 재산은 540억달러에 달합니다. 그리고 지난주 첫 주에만 3000만달러를 정치광고에 퍼부어 미 대선 사상 최대 기록을 간단히 넘어섰습니다.

앞서 언급한 CNN 여론조사에서 1위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8%로 1위였습니다. 하지만 한달전보다 지지율은 6%포인트나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워런 의원도 14% 지지(3위)를 받았지만 5%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부티직 시장이 11%로 한달 전보다 가장 많은 5%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내 급진적 흐름에 일침을 가한 것도 부티직의 부상에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5일 “건강보험 이민 등 이슈에서 몇몇 후보는 더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으려 하지만 이는 여론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무상교육, 전국민 의료보험, IT기업 해체, 부유세 등을 앞세운 워런과 샌더스 위원을 간접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월가에선 부티직의 민주당 경선 승리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미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흑인입니다. 흑인들은 1950~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에서 영향받아 인구수에 비해 투표 등록율과 참여율이 높습니다. 또 투표 성향도 비슷합니다. 이런 흑인들로부터 부티직은 인기가 '전혀' 없습니다. 최근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부티직에 대한 흑인 유권자 지지율은 0%를 기록했습니다.

부티직은 남성 남편과 함께 사는 동성연애자인데, 흑인들이 동성연애에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캘리포니아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를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됐을 때 흑인들은 압도적으로 금지에 표를 던졌습니다. 최근 퓨리서치(Pew Research )에 따르면 백인의 62%가 동성결혼을 지지하지만 흑인의 지지 비율은 51%로 훨씬 낮습니다. 흑인 표를 얻지 못하면 이들이 몰려있는 남부주에서 선거인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블룸버그와 브티직은 이런 난관을 이겨내고 민주당 대선 주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예상대로 워런 의원이 대선 주자가 돼 트럼프와 대선을 치를까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