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성년자 A군은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 부모 자금으로 추정되는 6억원을 부모와 친족 4명(각 1억원)에게 분할 증여받았다.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서다. A군은 이후 8월 서울 서초구에서 전세보증금 5억원을 포함해 11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편법 증여 의심 사례로 보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40대 B씨는 부모가 주택을 담보로 받은 개인사업자대출금 6억원을 차용증을 쓰고 빌렸다. B씨는 9월 이 돈을 26억원짜리 서울 용산구 주택을 사는 데 사용했다. 국토부는 부모가 6억원을 사업에 쓰지 않고 자식의 주택구입 자금으로 쓴 것은 대출 용도를 어긴 것으로 보고 국세청은 물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도 통보해 대출 관련 내용을 조사하도록 했다.
정부가 서울에서 신고된 아파트 등 공동주택 실거래 신고 내용을 집중 분석해 적발한 사례다. 1차 조사 결과 의심거래 세 건 중 한 건꼴로 편법 증여 등을 통해 주택구입 자금을 조달한 정황이 발견됐다. 서울 강남 4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 의심 사례가 집중됐다. 국토부와 행정안전부, 금융위, 서울시, 금감원 등으로 구성된 실거래 합동조사팀은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 지역 실거래 관계기관 합동조사’ 1차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올해 8~9월 서울에서 신고된 전체 공동주택 거래 2만8140건 중 가족 간 편법 증여 등이 의심되는 거래 2228건을 뽑아 진행했다. 이 중 매매 계약이 완결돼 조사할 수 있는 1536건 가운데 소명자료를 받은 991건을 우선 검토했다. 이 중 532건(53.7%)은 탈세 정황이 포착돼 국세청에 통보했다. 자료를 넘겨받은 국세청은 증여세 등 탈루 의혹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조사 대상에 오른 1536건의 절반 이상인 788건(51.3%)이 강남 4구와 마용성, 서대문구에 몰려 있었다. 고가 주택이 몰려 있는 만큼 전세보증금을 끼고 사는 갭투자를 하면서 부모나 형제로부터 모자란 자금을 융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밀 조사를 이어간 뒤 내년 초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이들에겐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국세청 등에 통보할 방침이다. 내년 2월부터는 국토부 중심의 ‘실거래상설조사팀’을 구성해 전국의 실거래 신고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조직 규모는 20여 명이 될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에도 이상 거래가 확인되는 경우 즉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