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디지털 프런티어] 'AI 네이티브' 세대에 거는 기대

입력 2019-11-28 18:36
수정 2019-11-29 00:17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카브야 코파라푸가 당뇨병에 걸린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인공지능(AI) 의료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한 건 2년 전이었다. 인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에게서 망막 혈관이 손상됐을 때 발생하는 당뇨성 망막 질환 의심증상이 나타났지만 이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었다. 코파라푸는 이 질환을 진단하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려 했다. 안구 사진을 직접 설계한 3차원(3D) 특수렌즈로 찍고, 해당 이미지를 3만4000건의 미국 망막정보시스템 데이터와 대조해 진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을 배웠고 AI 기계학습 프로그램을 익혔다. 코파라푸의 개발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 건 물론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원주민)에 이은 ‘AI 네이티브’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스마트폰에 능숙하고 유튜브와 클라우드를 경험하며 자라난 세대다. AI 알고리즘과 기능, 작동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이 세대를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가 많다. 문장을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는 모양이다. 모든 질문을 AI를 통해 해결해 AI 의존형 인간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초등학교에서 수학 포기자가 나오는 것 역시 이 세대다. 이들에게 재미만 주는 앱의 개발을 두뇌 해킹(brain hacking)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다른 세대와 완전히 다른 이들 세대의 특성이 있다. AI가 선사하는 자동번역과 AI 비서 서비스를 적절히 활용한다. 유튜브에 익숙하고 데이터가 뭔지 안다. 코딩을 배우며 자라나는 세대다. 한국도 지난해 중학교에 이어 올해 초등학교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다. 개개인 모두가 자신을 미디어로 인식하고 확산하는 힘을 지닌다. 이런 이유에서 오히려 능동지향적 인간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주위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밖에 할 수 없는 일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에서도 코파라푸처럼 도전적인 학생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시내버스 정보 제공 앱을 개발했던 고등학생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역사는 이들이 써가고 있다. 지금 어른들이 개발하는 AI는 이런 AI 네이티브 세대의 차지다. 디지털 미래의 혼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경도 없는 세상에서 세계 모든 AI 네이티브는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AI 네이티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