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위해 부산에 집결한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26일 ‘부산선언’을 통해 새로운 30년의 청사진을 밝혔다. 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특히 자유무역에 기반한 경제협력 강화로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공동 번영을 모색하고 한반도 평화가 역내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공동체 비전에도 합의했다. 청와대는 이번 특별정상회의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세션1 연설에서 “다가올 30년, 지금보다 더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 평화를 향해 동행하고 모두를 위해 번영하는 상생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의 불확실성을 아세안과 손잡고 헤쳐가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보호무역주의와 초국경범죄, 4차 산업혁명 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며 “우리의 협력·연대만이 그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션을 마친 뒤 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역내 교역과 투자를 활성화하고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중 간 무역갈등 등의 파고를 한국과 아세안의 역내 자유무역 강화로 넘어서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참가국들의 ‘의장성명’에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타결을 환영하고 2020년 협정에 서명할 수 있도록 잔여 쟁점을 해결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자유무역확대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문 대통령도 기조연설에서 “2007년 발효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은 역내 교역 확대와 경제발전의 주요 동력이 됐고, RCEP은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하나로 통합하는 거대한 경제블록의 시작을 알리게 될 것”이라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교역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한국과 아세안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아세안 역내 개발 및 인프라 증진 과정에서 한·아세안 스마트시티 협력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높이 평가했다. 사회·문화 협력에서 정상들은 2020년까지 상호 인적교류를 15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한국의 의지에 환영의 뜻을 모은 데 이어 아세안 회원국 대상 비자제도 개선, 아세안 국가와의 워킹홀리데이 협정 검토 등 한국의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세안 정상들은 한국의 신남방 공적개발원조(ODA) 전략 아래 한국의 개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2022년까지 아세안 국가에 대한 무상원조를 두 배 증액한다는 한국의 계획을 환영했다. 한국이 올해 한·아세안 협력기금 공여액을 두 배 늘린 점도 높이 평가했다.
한국과 아세안 정상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 첨단 산업 분야의 협력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날 공동비전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협력을 확대해 역내 각국 국민이 전자상거래, 사이버 안보, 디지털 기술, 혁신 및 정보통신 인프라 관련 기술과 지식을 배양하게 함으로써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아세안 공동체를 구축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을 지지하기 위해 아세안 주도 지역 협의체를 활용하는 등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고 촉진한다”고 약속했다. 이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증진’을 주제로 열린 업무오찬에서는 아세안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역할론도 집중 논의됐다.
부산=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