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글로벌 수요 위축 등 구조적 문제에도…내년 수출 기지개 켤 듯

입력 2019-11-26 17:45
수정 2019-11-27 00:36
올해 수출이 계속 줄고 있다. 2019년 통틀어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두 자릿수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대외 불확실성과 반도체 업황 부진 요인이 크다. 글로벌 교역도 지난 9월 1.3% 떨어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독일과 함께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런 국가에서 수출이 감소하면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 수출 부진이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한국은 경기에 민감한 경기변동형(cyclical) 산업이 수출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늘고 있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일궈온 수출에 새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관세청이 발표한 11월 수출은 지난 20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9.6% 줄었다. 10월 수출이 전년 대비 14.7% 감소한 데 이어 11월 수출도 두 자릿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경우 지난 6월 이후 6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마이너스 수출이 1년째 지속되고 있다.

물론 큰 폭의 마이너스 수출 기록은 올해만이 아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에 29% 급감한 적이 있고 2015년에도 평균 9%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수출이 크게 줄고 증가하며 다시 줄어드는 사이클을 타는 건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네덜란드 정책분석국이 발표한 세계무역모니터 통계에 따르면 9월 글로벌 교역량은 1.3% 감소했다. 두 달간 증가하다가 다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 간 교역량은 지난해 말부터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동남아시아의 교역량도 9월에 전년 동기보다 3.3% 줄어들었다.

올해 한국의 수출 하락은 이 같은 세계 경기 침체와 미·중 통상분쟁에 따라 국내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와 석유제품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은 10월 전년 동기 대비 32%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석유제품도 26.2%나 하락했다.


2008 위기 이후 수출 부침 심해

미·중 통상마찰이 시작될 때 이 분쟁이 한국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은 지금으로선 모두 틀린 셈이 됐다. 오히려 한국은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국가가 됐고,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가 반사이익을 얻는 모습이다. 당시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라던 독일은 유럽연합(EU) 역내의 경제 호전에 힘입어 9월 수출이 증가했다. 세계 경제에 미묘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수출 감소는 세계 주요 선진국의 인구가 줄어드는 ‘수축사회’로 접어들면서 수요가 더 이상 늘지 않는 구조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보호무역 추세도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다. 한국 제품에 수입 규제를 취한 국가는 10월 1일 기준 29개국 172건이다. 4년 전에 비해 43건 늘었다. 국내 수출산업이 특정 품목에 장기간 편중돼 있어 여러 품목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점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 수출이 추락한 이유로 주목을 많이 받는 것은 석유제품 반도체 철강 조선 등 경기변동형 산업의 침체다. 이 같은 경기변동형 산업은 초기 고정 비용의 규모가 크고 첨단 기술력이 필요치 않은 중후장대 산업들로 한국 산업의 특징을 이룬다. 이들 제품 모두 경기와 유가에 민감한 제품군이다.

이 산업의 부침과 역동성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지금은 반도체가 침체 사이클에 접어들었고, 석유와 철강 또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이들 기업이 호황을 맞는다. 세계 경기 침체에 따라 이런 경기변동형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조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어

제조업 해외 투자 증가도 수출 부진 원인을 찾는데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제조업 투자는 57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5년 전인 2014년 2분기(28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전체 해외투자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제조업 해외투자는 올 들어 갑자기 늘었다. 현지시장 진출과 선진 기술 도입 등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한국의 정치 경제적 리스크가 커지는 현실도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일 것이다.

해외 이전 국가에선 중국 비중이 30% 이상으로 가장 높다. 최근 들어서는 아세안 국가들로 많이 이전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해외투자 중 아세안 국가 비중이 2000~2010년 13.4%에서 2011년 이후 21.4%로 8%포인트 증가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임금이 낮고 미·중 무역 마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득이 있다.

일본의 경우 해외 진출 기업의 40%가 제조업이다. 전체 제조업의 해외 생산비율은 25%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생산을 해외에서 하고 있는 기업들의 수출은 낮게 평가되기 쉽다.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걸 무시하고 기업들이 쇠퇴한다는 구조로는 설명이 안 된다. 올해 2분기 수출만 해도 베트남의 경기 둔화가 수출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베트남 수출은 국내에서 진출한 기업들의 중간재가 많다.

수출경쟁력 평가 갈수록 힘들어

학자들에 따르면 아시아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서 가장 활동적인 곳은 대만, 한국과 중국 사이에 분업을 이루는 전기 전자기기 산업이다. 중국에서 부가가치 무역이 늘어났지만 이들 분야에 외자기업이 많다. 현재 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외자기업의 비율은 40%가 넘는다. 중국을 매개로 세계에 진출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다.

당장 국내 수출이 크게 나아지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12월 실적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지난해 말 수출 하락에 따른 기저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조선산업 경기도 부활하면서 수출 불황이 끝나갈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석유화학 업계도 내년 신규 정제설비 증설 감소에 따른 석유제품 수급이 개선되면서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내년 수출은 전년의 감소에 따른 기저효과와 세계 경제 둔화세의 진정,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일부 개선 등에도 불구하고 미·중 무역분쟁,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소폭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 역동성 적극 살려야

중요한 건 한국 경제에서 수출의 영향과 기여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다. 해외 진출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 조달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고리를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시장을 파고드는 역동성과 기민성은 대단하다. 최근 현대자동차 전기차 코나가 미국에서 잘 팔리는 것도 좋은 사례다. 기업은 위기에 재빨리 움직이지만 정부는 리스크만 키운다. 해외 기업들을 다시 한국으로 유턴시키는 정책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국내에 기업을 유치하고, 수출 촉진을 위해 국내 투자 여건을 개선하고, 기업들이 시장 개척을 하는 데 적극 지원해야 할 때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하도록 한국 기업과 해외 기업 간 만남 등을 많이 주선하는 등 적극 노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