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EB하나은행의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따르면 1990년대와 2010년대의 소비항목 지출을 분석한 결과 모든 연령대에서 식료품 구입과 의류 관련 지출 비중은 감소했지만 교통비가 크게 증가했다. 1990년 전체 소비에서 7.9%를 차지했던 교통비는 2018년 13.3%로 많아졌다.
자동차업계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자동차 가격이 오르고 구입 차종의 고급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고급 및 대형 차량 선호 현상과 기름값 상승이 맞물리며 교통비 지출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
실제로 그럴까. 1992년 9월 현대자동차가 ‘뉴 그랜저’를 내놨을 때 자동 변속기 기준 주력 차종인 ‘3.0 소셜’ 모델 가격은 2590만원이었다. 수동 변속기 모델도 있었기 때문에 가격은 1850만~3490만원의 범위를 형성했다. 이후 20여 년이 지난 2012년 그랜저(HG)의 가격은 3012만~4093만원 정도로 올랐다. 모든 옵션을 더하면 가격은 4400만원에 달한다. 주력 모델인 ‘3.0 프리미엄’의 경우 옵션을 모두 적용하면 3880만원 정도였다. 20년 전 주력 모델과 비교하면 무려 1290만원가량 비싸졌다.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992년 L당 휘발유 가격은 555원 정도였는데 2012년 2000원에 육박했다. 물론 2019년 현재 1500원대로 안정됐음에도 1992년과 비교하면 크게 인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랜저를 사는 소비층도 늘었다. 1992년 그랜저는 성공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중형 세단만 보유해도 부러운 시선이 몰리던 때다. 그랜저는 아무나 탈 수 없는 차였다. 하지만 현재 그랜저는 쏘나타와 비슷하게 판매될 만큼 대중화됐다. 올해만 해도 11월까지 쏘나타가 8만2000대 판매될 때 그랜저 또한 7만9000대 팔렸다. 그리고 신형이 등장하자마자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연령별 소비층도 흥미롭다. 자동차 구입을 포함한 교통비 지출 비중이 큰 연령대는 30대와 50대다. 40대는 자동차를 바꾸고 싶어도 교육비 지출이 많아 일단 참고 기다린 뒤 50대에 들어서면 다시 억눌렸던 구매욕을 현실화한다. 당연히 구매 차종의 등급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공유 경제가 언급되면서 앞으로 자동차 구매욕이 억제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자동차업계는 인구 감소에 따른 구매층 축소가 우려될 뿐 구매욕은 쉽게 억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매와 이용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자동차 소유에는 ‘필요할 때 이동한다’는 기능적 가치가 포함되지만 ‘단순한 이동’에는 소유의 본능이 반영되지 못하는 탓이다.
오히려 대중적인 이동의 편리성이 증대되면 소유욕이 높아져 구입 차종의 고급화가 진행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자가용의 사용 거리가 짧아져 차를 바꾸는 시점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있다. 모든 자동차 회사가 스마트 모빌리티(이동수단)를 하겠다고 앞다퉈 뛰어드는 것도 결국 직접 만든 제조물의 사용 극대화를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넓은 소비층에 ‘박리다매’로 접근했다면 앞으로는 줄어드는 소비층을 겨냥해 ‘다리박매(多利薄賣)’로 다가가되 제조를 벗어나 교통 사업에도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구 구조가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