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머리, 퀭한 눈과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 후줄근한 평상복….
청순미의 대명사였던 배우 이영애(48·사진)가 확 달라졌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만에 출연한 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에서다. 그는 실종된 아이의 소식을 6년 만에 듣고 낯선 마을에 찾아가는 엄마 정연 역을 해냈다. 25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영애를 만났다.
“인간군상의 지리멸렬함, 복잡하고 기괴한 현실을 잘 담아낸 영화입니다. 시사회 직후 언론의 호평에 기분이 ‘업’돼 있어요. 사람들은 보고 느끼는 게 비슷한가 봐요. 따뜻하고, 뭉클한 여운이 남는다고들 해요.”
영화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처절한 슬픔과 끔찍한 아동학대 현장을 펼쳐놓는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잇속만 챙기려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놓치지 않는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어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이끌려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이영애는 2009년 사업가 정호영 씨와 결혼해 슬하에 쌍둥이 승권 군과 승빈 양을 두고 있다. 그는 엄마의 입장에서 고민이 컸다고 한다. 엄마가 된 후 아동 실종이나 학대에 관한 뉴스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찾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고, 배 위에서 절규하는 장면 중 많은 부분이 잘렸어요. 배우로서 폭발적인 감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감독은 감정 절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영애는 육체적으로도 강도 높은 연기를 선보였다. 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에 뛰어들고 갯벌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무자비하게 맞기도 한다. “액션 스쿨에 가서 몸을 구르는 것을 연습했지만 갯벌에서 구르다 보니 어지럽더군요. 나이 들기 전에 액션을 몇 번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액션 신으로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준 것만으로 보람이 있어요.”
스크린에 오랜만에 복귀한 소감을 물었다. “시간이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어요. 20~30대를 열심히 연기했고, 원하는 가정을 이뤘고, 육아에 전념했거든요. 아이들이 아홉 살이라 지금도 엄마 역할이 중요해요. 일과 가정을 균형있게 가져가고 싶다고 늘 기도합니다.”
그는 현재로서는 일과 가정 중 가정을 더 중시한다고 했다. 늦게 결혼한 데다 아이들도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시기여서 체력적으로도 병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좌우명까지는 아니지만 균형과 절제는 삶에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욕을 먹더라고요. 감정을 많이 끌어올렸으니까 감동하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조금씩 덜어내는 게 좋더라고요. 저는 10대와 20대에 연기 면에서 과하게 살았어요. 조기 종영 등 실패한 작품도 많았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30대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영애는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로 성공을 거뒀고, ‘봄날은 간다’와 ‘선물’로 호평을 얻었다. 2003년 MBC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이영애는 전날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두 아이와 집을 공개하며 엄마로서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제게 ‘신비주의’라고들 말하는데, 특별히 그렇게 포장하지는 않았어요. 제 성격이 문제였죠. 10~20대에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어요. 잘 나서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신비주의’나 ‘산소 같은 여자’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많이 바뀌었어요. 가정이 생기다 보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고, 학부모 생활을 하다 보니 서서히 마음도 열리고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는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