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해외조달시장, 중소기업 성장의 기회로

입력 2019-11-25 17:53
수정 2019-11-26 00:07
“30개국에 특허를 등록할 만큼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했어도 해외 입찰에서는 국내 판매실적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지난 11~12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 시제품 전시회’에 참가한 혈액진단키트기업 대표의 호소다. 이 제품은 다중면역진단 원천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기존 다국적 기업 제품보다 2.5배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정부의 혁신 시제품 시범구매사업을 통해 국내 실적을 확보했다.

수출, 특히 해외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판로를 개척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다. 혁신제품이라면 ‘국내외 실적’이 가장 어려운 관문이다. 이 밖에 해당국 제도와 규격, 문화 차이, 비즈니스 관행까지 습득해야 하니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장벽이 높다. 판매실적과 배경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에 해외조달시장은 요즘 유행어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조달시장의 중소기업 수주율은 80%에 달하며 이미 포화상태다.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과당경쟁하지 않고, 기술 도태와 시장 낙오의 위험에서도 벗어나려면 큰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조달청은 중소기업이 해외조달시장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많은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조달청 사용법’ 네 가지를 알고 나면 많은 기업이 해외조달시장에 도전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첫째, ‘지패스(G-PASS) 기업’을 기억해두면 좋다. 조달청은 ‘해외조달시장 진출 유망(G-PASS)기업’을 지정해 조달 전시회 참가와 수출상담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매년 나라장터 엑스포(4월), 공공조달 수출상담회(11월) 같은 대규모 국내 상담회도 열어 해외 구매자와 연결해준다. 이번 공공조달 수출상담회에는 총 29개국, 78개의 해외 바이어와 발주처가 참석해 250개 국내 기업과 607건의 1 대 1 상담을 했다. 총 1235만달러의 수출계약이 체결되고 건축자재뿐 아니라 치과용 센서, 현미경 등 의료기기와 보안 시스템 등 수출 상담 품목이 다양화되고 있다.

둘째, 해외조달시장 정보를 편리하게 얻을 수 있다. 외교부와 협업해 유엔조달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고, 세계 190여 개국의 입찰정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셋째, 혁신제품의 판매실적을 쌓을 수 있다. 검증된 제품을 선호하는 국내 조달 관행상 많은 신제품은 국내 판로도 확보하기 어렵다. 조달청은 올해부터 혁신 시제품 시범 구매사업 등으로 혁신제품의 최초 구매자가 돼 판로를 지원하고 있다.

넷째, 20조원 규모의 유엔조달시장 공략을 지원한다. 유엔시장은 진출이 어렵지만 진입만 성공하면 오래 거래하는 장점이 있다. 규범과 절차 등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익히며 준비한다면 중소기업에 최적의 시장이 될 수 있다. 조달청은 다자개발은행 등 국제기구 조달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 5월 개척단을 파견했다. 11월엔 유엔조달 심화 워크숍을 마련했다. 내년부터는 유엔 지역사무소들을 공략해 실질적 입찰 기회를 확보하고 수주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G-PASS 기업의 수출실적이 2015년 3조4000억원, 2017년 5조8000억원에서 올해는 7조300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시범 시행하며 국내 기업을 해외 현지조달 벤더와 1 대 1로 연계해준 ‘수출전략기업 육성사업’은 올해 2년째인데도 100억원이 넘는 계약 체결 성과를 달성했다. 앞으로도 해외조달시장에 대한 관심 증대, 정부의 전략적 지원, 기업의 기술력이 더해져 성과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