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소미아 유지, 한·미·일 동맹 복원으로 이어져야

입력 2019-11-22 18:21
수정 2019-11-23 00:19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한 것은 다행스런 결정이다. 일본이 한국에 취한 수출규제 조치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이어서 상황이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어서다. 당초 ‘연장 중단’을 공언했고, 시한(23일 0시)을 코앞에 두고서까지도 ‘파기방침 불변’임을 밝혔던 정부가 입장을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상원이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우리 정부를 압박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지소미아 사태는 외교·안보정책의 불안한 현주소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의 균열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은 대놓고 실망감을 표출했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계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 500% 인상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갖은 모욕과 생떼를 참아가며 집착에 가까운 대북 정책을 추진했지만 돌아온 것은 ‘실효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아니라 미사일 도발과 금강산 시설물 철거 요구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한반도 주도권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끈끈하게 밀착하고 있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방식으로 한·미·일 군사 공조를 시험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미국이 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줄타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교·안보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여권의 행태는 특히 걱정스럽다. 지소미아 사태 와중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기 바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사태가 총선에서 민주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비난 받았다. 중국은 역사문제와 영유권 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은 일본과도 실리외교를 펴는데, 우리 정부는 외교를 이념으로 접근하고, 여당은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외교안보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계속 치솟고,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12거래일 동안 2조원어치 넘게 매도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미·중 무역갈등 격화 외에도 안보 불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된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신용 강등 위험을 경고한 마당에 안보리스크까지 부각될 경우 국가신용등급마저 떨어지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한·일 양국은 더 이상 지소미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지 말고 실질적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중국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 동북아 지역 안보를 공고히 하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5년 정부의 체면’이 아니라 대한민국 안보를 굳건히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