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한동호 선수(33·오른쪽)는 21일 서울 합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한 선수는 지난 10일 그리스 아테네 국제마라톤에 참가해 42.195㎞를 4시간27분38초에 달렸다. 시각장애인 선수가 방향을 잡아주는 ‘가이드 러너’ 없이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세계 최초다.
한 선수의 가이드 러너는 사람이 아니라 웰컴저축은행이 개발한 ‘웰컴드림글래스’라는 웨어러블 기기였다. 한 선수는 각종 센서가 달린 고글과 미니 컴퓨터를 몸에 착용했다. 고글에 달린 카메라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센서가 수집한 정보는 컴퓨터 처리를 거쳐 LTE망을 통해 서버로 송신됐다. 상황실 컴퓨터가 시각정보를 처리한 뒤 방향과 장애물이 있는지를 골전도 이어폰을 통해 한 선수에게 알려줬다. 당시 유튜브 등을 통해 경기를 시청하던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도 한 선수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웰컴저축은행은 첫 번째 ‘꿈테크 프로젝트’로 한 선수의 마라톤 도전을 지원했다. 꿈테크 프로젝트에 대해 김대웅 웰컴저축은행 대표(왼쪽)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도전을 주저하는 이들을 돕고자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웰컴저축은행이 비대면 금융 앱(응용프로그램) ‘웰뱅’을 개발하며 축적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웨어러블 기기 개발에 나섰다. 디지털 마케팅 회사인 더크림유니언, 이병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뜻을 모았다.
다음 과제는 대회에 참가할 마라토너를 찾는 일이었다. 여러 선수를 검토한 끝에 한 선수를 지원 대상으로 정했다. 그는 10여 년 전 대학 재학 시절 갑작스러운 시신경 위축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철인 3종경기 선수로 성공해 ‘꿈을 향한 도전’이라는 프로젝트 취지에 가장 알맞은 인물이었다. 한 선수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차원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꼭 뛰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골라인을 통과한 뒤 한 선수와 웰컴저축은행 스태프들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웰컴저축은행은 웨어러블 기기를 개발한 뒤 각종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한 선수의 훈련을 7개월간 지원했다.
김 대표는 “한동호 선수의 완주는 누구에게든 꿈과 희망이 있다는 점을 되새겼다”며 “저축은행도 돈을 저축하는 곳만이 아니라 꿈을 저축하는 곳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