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홍콩 시위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했다. 미 상원이 19일(현지시간) 홍콩 시위 지지법안을 통과시키자 중국 정부가 즉각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면서다. 미·중이 ‘미니딜’로 불리는 1단계 무역협상 타결을 위해 막판 힘겨루기를 벌이는 가운데 홍콩 시위가 미·중 관계를 좌우할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 상원은 이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 행정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에 특별지위를 계속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한 게 법안의 핵심이다. 미국은 현재 관세, 무역, 비자 등에서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달리 특별대우하고 있는데, 이를 매년 재심사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발효되면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홍콩 위상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법안엔 홍콩의 자유를 억압한 책임자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조항도 담겼다.
미 하원은 이미 지난달 비슷한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상·하원은 조만간 조율을 거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최종 법안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서명하면 정식으로 법안이 발효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법안 통과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홍콩이든, 중국 북서부든, 그 어느 곳에서든 자유의 억압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홍콩 시민을 무자비하게 대하면 위대한 지도자나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 상원의 법안 통과 직후 3시간여 만에 성명을 내 “홍콩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한 걸 강력히 규탄한다”며 “중국은 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강력한 조치로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자오위 중국 외교 차관은 이날 임시 대사대리인 윌리엄 클라인 주중 미국대사관 공사 참사관을 초치했다. 마 차관은 이 자리에서 “어떠한 외국 정부와 외국 세력도 간섭하도록 용납하지 않겠다”고 항의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법률상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상·하원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홍콩 시위 지지 법안이 상·하원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결국엔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미 정치권은 홍콩 당국의 시위대 처리 문제를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경찰은 지난 17~18일 시위대의 ‘마지막 보루’였던 폴리텍대에 진입해 시위를 진압하고 시위대 1100여 명을 체포했다. 이 중 격렬하게 저항하다 18일 밤 체포된 200여 명 전원을 폭동죄로 기소할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폭동죄는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적용하는 혐의 중 가장 엄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장 징역 10년형에 처해진다.
홍콩 사태가 미·중 무역전쟁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이날 지역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사태와 관련, “이 문제가 인도적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중국과 (무역)합의가 매우 어려울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8월 중국을 방문했다가 억류됐던 당시 홍콩 주재 영국 영사관 직원 사이먼 정(鄭文傑·29)이 중국 공안(경찰)에게 구금과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이날 폭로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이먼 정은 중국 공안이 그에게 홍콩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을 실토하라고 압박했다고 영국 BBC 인터뷰 등을 통해 폭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즉각 런던 주재 류샤오밍 중국대사를 초치해 강하게 항의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일축하면서 오히려 베이징 주재 영국대사를 초치해 분노를 전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워싱턴=주용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