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시민 볼모' 3년 만에 또 무기한 파업…물류대란 우려

입력 2019-11-20 17:15
수정 2019-11-21 00:37

20일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으로 시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과 산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서울역 매표창구는 30%만 운영됐고, 시멘트 운송량은 평소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파업에 따른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도 철도노조는 “인력 4600명을 더 채용해달라”며 무기한 파업을 강행했다. 전문가들은 “코레일 적자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데 전체 직원의 15%가 넘는 4600명을 더 충원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만 1000억원 적자

철도노조가 3년 만에 무기한 파업에 나선 핵심 이유는 인력 충원이다. 노조는 내년 도입할 4조 2교대 근무를 위해선 4654명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오영식 당시 코레일 사장과 맺은 ‘교대 근무체계 개편을 위한 노사합의서’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당시 인력 충원 규모는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오 사장이 KTX 탈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12월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직무진단 용역 결과 인력 1865명을 충원하면 4조 2교대 근무가 충분하다며 맞서고 있다. 코레일은 인력 1865명을 증원하면 매년 비용이 25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4600명을 충원할 때는 연간 6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코레일은 지난해 339억원의 영업적자, 104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경영 상태와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해야 하는 만큼 인력 충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더 신중하다.

김경욱 국토부 제2차관은 “노조 요구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주간 근로시간이 31시간으로 떨어지는데 이를 국민이 동의하겠느냐”며 “사측 요구안에도 산정 근거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현재로선 검토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임금 인상을 두고도 노사 간 의견차가 크다. 철도 노조는 임금 4%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코레일은 공공기관 가이드라인(1.8%)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은 힘들다고 주장한다. 코레일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으면 경영상 불이익이 크다”고 말했다.


시멘트 운송량 4분의 1로 줄어

파업 첫날인 이날 열차 운행간격이 커져 시민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일부 시민은 이용하려던 노선이 운행 정지되면서 급하게 표를 구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김금자 씨(69)는 “울산 집으로 가는 표를 사야 하는데 직행 열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대전과 동대구를 거쳐 가야 한다”며 “동대구에서 울산 가는 표는 아직 사지도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매표를 담당하는 코레일네트웍스 등 자회사가 함께 파업하면서 매표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날 서울역에서는 12개의 매표창구 중 4개만 운영돼 표를 사려는 시민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김해에 사는 김차순 씨(65)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서울에 올라왔는데 15분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 예정된 서울 주요 대학 논술 및 면접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불편도 예상된다.

물류 수송 피해는 더 심각하다. 화물철도 운행은 이날 평소 대비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하루평균 4만t이던 시멘트 철도 운송량은 이날 1만t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파업이 사흘가량 지속되면 수도권 시멘트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성수기는 9월부터 11월까지인데 이번 파업으로 공사 현장에 시멘트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며 “파업이 길어지면 충북 제천 단양 등의 시멘트 공장에서 도로 운송 등 대체 수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철도 물류 비중이 낮은 자동차, 전자, 철강업계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파업이 장기화화면 산업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화물 운송률이 40%대로 떨어지면 석탄과 시멘트 등 기본적인 산업 자재 유통이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며 “당장 재고가 있는 1~2주는 버텨도 그 이후는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길성/배태웅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