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골프용품 및 골프웨어 전문 업체 혼마골프는 올 가을부터 홈페이지에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가상의 모델들이 ‘2019년 가을·겨울’ 제품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간의 얼굴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정교합니다. 50여개 제품 이미지에 AI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델의 얼굴을 적용해 홈페이지의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1만명이 넘는 다양한 얼굴과 의류 조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골프웨어를 찾아보라는 의미라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그동안 의류 사이트에서는 모델이 1개의 상품을 입고 촬영하는 데 약 100장의 사진을 촬영해 왔는데 AI기술을 이용하면 모델 촬영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처럼 혼마골프의 사례에 적용된 AI 알고리즘 일종인 ‘적대적 생성 신경망(GAN)’이라는 기술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GAN은 AI모델 간 경쟁을 통한 심화학습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혼마골프의 경우처럼 실재하지 않는 모델의 모습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는 것은 AI가 데이터를 학습해 거짓 데이터를 생성하는 모델과 이를 감별하는 모델이 서로 경쟁하면서 무한 반복하는 학습을 통해 점점 더 실제에 가까운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부자연스러운 얼굴들을 AI가 만들었지만 경쟁을 거듭하다 보니 점점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힘든 모습들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AI의 심층학습을 가속화할 수도 있고, 자율주행이나 의료분야에도 널리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I기술 선도국인 미국이나 방대한 빅데이터 활용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에 뒤쳐져 있는 일본으로선 AI 기술력에서 미·중 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의 AI학습 방법은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GAN기술은 빅데이터를 보유 하냐, 못하냐의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 없이 대량의 데이터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에 따라 GAN을 사용하면 존재하지 않지만 진짜 같은 데이터를 양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 화상환자의 사례와 매우 유사한 수술화상을 의료용 AI로 접하면서 공부할 수도 있고, 자율주행 기술의 시뮬레이션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AI관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GAN분야 기술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혼마골프 홈페이지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 이미지를 만든 교토 소재 AI전문기업 데이터그리드는 앞으로 모델과 의복의 화상을 따로 준비해 마치 옷을 갈아입는 듯한 모습까지 AI로 구현할 계획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유니콘기업인 프리퍼드네트웍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미쓰비시전기는 불량품 검지 작업에 GAN을 적용한 AI기술을 도입키로 했고, NTT커뮤니케이션은 콜 센터에서 응답음성 제작에 GAN기술을 도입해 진짜 사람이 응대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반도체 상사 맥니카는 다양한 날씨와 시간대, 장소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시스템 개발 도전에 나섰습니다. DeNA도 GAN분야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8일 열린 야후재팬과 라인의 경영통합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두 회사가 통합 이후 매년 1000억엔(약 1조698억원)을 AI 분야에 투자할 계획을 밝히는 등 일본 업계 사이에서 AI에 대한 관심은 매우 뜨거운 상황입니다. 차세대 먹거리 사업인 AI분야에서도 선도국인 미국과 중국 뿐 아니라 일본 등 각국의 경쟁이 매우 치열한 모습입니다. 한국도 이 같은 경쟁대열에서 밀리지 않고, AI분야에서도 탄탄한 강국의 위상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