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준우승'이 어때서

입력 2019-11-19 18:01
수정 2019-11-20 00:18
꽃다발도 없고, 플래카드도 없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한 야구 국가대표팀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경문 감독은 “죄송하다”고 했다. ‘홈런왕’ 박병호는 성적 부진 때문에 전날 시상식에서 눈물까지 쏟아냈다.

숙적 일본에 두 번이나 패했으니 대표팀의 마음이 무거울 만도 하다. 결정적인 한 방을 쳐줄 ‘해결사’들의 부진이 안타까웠다. 8경기 내내 붙박이 4번타자였던 박병호는 홈런 없이 단 2타점에 그쳤고 ‘타격왕’ 양의지는 1할도 때리지 못했다. 그러나 준우승에다 내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딴 대표팀이 사과까지 해야 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는 일본보다 반세기 늦다. 일본은 1934년 프로리그 출범 이후 야구가 스모와 함께 국기(國技)로 대접받고 있다. 고교 야구팀이 4300여 개나 된다. 한국의 80개보다 53배 많다. 이번 대회 우승 주역인 일본의 ‘어린 필승조’는 청소년 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시속 150㎞대의 빠른 공으로 한국 타선을 제압했다.

양국의 인프라 차이 또한 크다. 1988년 지은 도쿄돔은 약 4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구장이다. 2015년 개장한 서울 고척스카이돔 수용 관중은 약 1만600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일본의 경기당 관중은 약 3만 명으로 세계 프로야구 평균 관중 수 1위다. 이런 조건에서 준우승의 영예를 안았으면 박수를 쳐 줘야 하지 않을까.

흔히 은메달 수상자의 표정이 동메달 수상자보다 밝지 않다고 한다. 2등은 1등을 놓쳤기에 그렇고, 3등은 메달을 못 딸 수 있었는데 땄으니 기쁘다는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첫 메달리스트인 사격의 진종오 선수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거의 갔다가 은메달에 머물렀을 때 “죄송하다”고 한 게 그런 경우다.

그러나 ‘으뜸’(1등)만큼 ‘버금’(2등)도 소중하다. 메이저리그(MLB) 정상급 투수가 된 류현진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역전패의 수모를 당한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주역으로 성장했다.

다행히 이번 대회 베스트 11에 뽑힌 이정후·김하성 등 ‘젊은 피’가 세대교체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8개월 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