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前 회상하며 쓴소리 한 김인호·윤증현 "후배 관료들, 나쁜 정책 견제할 野性 되찾아야"

입력 2019-11-19 17:28
수정 2019-11-20 02:08
1987년 어느 날 서울 모처에서 김인호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과 윤증현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은 소비자보호제도 개편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금융상품 소비자를 보호하는 내용 등이 담긴 소비자보호제도를 준비하던 김 국장에게 당시 재무부에서 금융소비자 업무를 관할하던 윤 과장이 “경제기획원 소관 업무가 아니다”고 항의한 것이 논쟁의 단초가 됐다. 김 국장은 윤 과장과 논쟁하던 와중에 “재무부는 과장이 상급자인 국장한테 이렇게 대들어도 됩니까”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77)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73)은 지난 13일 서울 코엑스의 한 세미나실에서 32년 전 인연을 꺼내며 웃었다. 김 전 수석의 회고록 <명(明)과 암(暗) 50년-한국경제와 함께>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공직생활 기간이 도합 70년에 달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야성(野性)’이 넘쳤던 관료로 평가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날 기념회 축사에서 “공직생활을 오랜 기간 이어가면 조직에 길들여지고 기가 빠지면서 야성이 사라진다”며 “김 전 수석은 보기 드물게 야성이 충만한 정통 관료로서 존경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료들은 패기 넘치는 논쟁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하지만 요즘에는 기개 있는 관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인의 판단 기준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어떻게 집권을 연장하고 표를 더 받느냐다”라며 “관료들이 이 같은 정치적 결정을 과학적 판단으로 견제해야 하지만 요즘 보면 그런 모습이 사라진 듯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은 국가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탈(脫)원전 정책이 추진되는데 청와대와 정치인, 상급자에게 항변하는 공무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후배 공무원들이 직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도 이날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후배 관료들에게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정을 맡은 사람들이 시장의 문제해결 기능과 기업의 긍정적 역할을 부정하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며 “나쁜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재부가 추진하는 확장재정 정책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김 전 수석은 “외환위기 당시 문제가 된 것은 대부분 기업과 금융회사의 외화부채였고 국가부채는 20억~30억달러에 불과했다”며 “그렇게 지킨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이 정부에 와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직을 준비하는 사람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공무원이 제대로 일하면 적잖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안정적 삶만을 고려해 공직에 몸담을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시장을 생각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숙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