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전문 행정사는 최근 황당한 의뢰를 받았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 일용근로자 외국인이 “직장가입으로 자격을 바꾸고 같이 사는 부모와 장모도 피부양자로 등록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해왔다. 현행법상 일용근로자는 지역가입밖에 할 수 없다. 그는 “일종의 편법을 가르쳐달라는 얘기여서 ‘내 업무 영역이 아니다’고 거절했다”고 전했다.
올 7월 시행된 ‘외국인 건보 지역가입 의무화’ 이후 외국인이 피부양자 등록에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피부양자는 건보 직장가입자의 부모, 배우자, 자녀 등으로 건보 혜택을 받지만 건보료는 한 푼도 안 낸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외국인(재외국민 포함) 피부양자는 올 9월 20만6700여 명으로, 작년보다 1만6000여 명(8.9%) 늘었다. 2만4300명 늘었던 2014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이 과정에서 위장취업 등 편법이 늘어나는 움직임마저 보여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외국인 건보 의무화 ‘풍선효과’
보건복지부는 선택 사항이었던 외국인 건보 지역가입을 올 7월부터 의무로 바꾸고 매달 최소 11만3050원의 보험료를 물리고 있다. 지역가입을 위한 국내 체류기간도 3개월 이상에서 6개월 이상으로 늘렸다. 3개월만 버티다가 건보에 가입해 의료 혜택을 본 뒤 본국으로 돌아가는 ‘얌체’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의무가입 시행으로 외국인 건보 가입자는 작년 말 97만 명에서 올 9월 125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풍선효과’가 함께 나타났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외국인 직장가입자 가족 중에는 친족관계 증명 등 서류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피부양자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꽤 있었다”며 “이런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10만원 넘는 건보료를 내야 할 처지가 되자 너도나도 피부양자로 등록하고 있다”고 했다. 친족관계 증명 등 서류 작업을 해주는 행정사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는 배경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국제행정사사무소 관계자는 “한 달에 많아야 두세 건 정도였던 외국인의 건보 피부양자 관련 업무가 7월 이후 10~20건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위장취업 등 편법 확산” 우려
문제는 각종 편법까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가입 자격이 안 되는 외국인이 평소 알던 사업주에게 ‘건보료를 전액 부담할 테니 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해 직장가입자가 된 뒤 가족을 피부양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보건업계 관계자는 “위장취업에 대한 실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법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조차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피부양자가 건보 혜택만 받고 귀국하는 ‘먹튀’를 막을 장치도 없다. 지역가입자는 6개월 이상 한국에 머물러야 건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피부양자는 이런 요건이 없기 때문이다. 집안의 가장이 취직하면 바로 직장가입자가 되고 그 가족도 친족관계 증명만 되면 즉시 건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 지역가입에서 피부양자와 비슷한 개념인 ‘세대원’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인정해주는 반면 피부양자는 부모와 장인·장모까지 가능하다. 지역가입의 ‘구멍’을 막으려다가 피부양자 부분에서 구멍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국인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회사원 정모씨는 “우리 국민은 평생 세금과 건보료를 내다가 늙어서 피부양자 혜택을 받는데 한국에 아무 기여도 안 한 외국인의 부모까지 혜택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보료 체납자도 급증
위장취업 같은 꼼수를 못 쓰고 지역가입자가 된 외국인 사이에선 건보료 체납이 늘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외국인 건보 의무가입 시행 이후 추가 가입한 가구 중 30.4%는 보험료를 미납하고 있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내국인 지역가입자 최소보험료가 1만31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11만3050원은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한국에 온 뒤 6개월까지는 큰 부상을 당해도 건보 적용을 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장은 “외국인은 피부양자를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제한하고 위장취업 등 편법 관리를 강화하되 최소보험료는 낮춰주는 등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