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토한다더니"…서울시, 광화문광장 공사비 600억 책정

입력 2019-11-18 17:10
수정 2019-11-19 02:46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이 ‘사업 기간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설계 재검토 의사를 밝힌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공사비 약 600억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완공 시점도 박 시장의 임기 만료를 앞둔 2021년 12월로, 기존 계획에서 불과 6개월만 늦췄다. 지난 9월 여론 수렴을 통해 설계부터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내부 기한을 세워두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강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광장 공사비로 예산 600억원 책정

서울시가 지난 1일 시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추진단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집행할 공사비로 총 601억원을 배정했다. 광화문 시민광장 조성 공사비 274억원, 역사광장 조성사업의 공사비와 감리비로 213억원을 편성했다. 광화문광장 주변도로를 정비하는 광화문 일대 보행환경 개선사업의 토지보상비와 공사비를 합쳐 114억원을 배정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광화문 월대 복원과 사직율곡로 폐쇄 및 우회도로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역사광장’ 조성과 세종문화회관 방면 세종대로를 광장으로 편입해 광장면적을 넓히는 ‘시민광장’ 조성사업으로 나뉜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공사비까지 반영하고 나서면서 당초 박 시장의 약속과 달리 내년 착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보상 절차에만 적어도 1년이 걸리는데 공사비까지 반영한 것은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시장은 지난 9월 서울시의 새 광화문광장 조성안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밝히고 행정안전부가 제동을 걸자 “시민 목소리를 더 치열하게 담아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완성하겠다”며 “사업 시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이후 여론 수렴을 한다며 올해 말까지 차례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비와 보상비를 예산에 포함한 것은 내년 광장 추진에 관한 여론이 수렴될 경우를 감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에 사업 추진이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지, 불용 가능성이 있는 예산을 미리 잡아놓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병국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은 “제한된 금액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다른 사업에 써야 할 수도 있는 예산을 여론 수렴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사업에 공사비까지 잡은 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사업 완료 기간도 6개월만 연기

서울시는 예산안에 명시한 사업 완료 기간도 2021년 6월에서 2021년 12월로 불과 6개월 늦췄다. 2022년 3월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업을 끝내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의 추진 의지가 강하고, 추진단에서도 내부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의 투자심사를 회피하기 위한 ‘사업 쪼개기’ 의혹도 제기된다. 광화문 일대 보행환경 개선사업은 지난해 10억원에서 10배 넘게 늘어난 114억원이 편성됐다. 서울시는 당초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제외한 광화문 시민광장 사업비로만 497억원을 책정한 바 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 사업도 사업비가 500억원을 넘으면 행안부의 중앙투자심사위원회 심사를 넘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예산 항목을 쪼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행환경 개선은 재구조화 사업이 아니어도 추진했을 사업으로, 두 사업은 별개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