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환절기 불청객, 독감

입력 2019-11-17 17:31
수정 2019-11-18 00:26
스페인 독감이 발병한 1918년만 해도 인류는 독감과 감기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독감을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독한 감기’ 정도로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그해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5배 이상이 독감으로 죽은 것이다. 당시 비참전국이어서 전시 보도통제가 없었던 스페인에서 관련 기사가 자주 보도돼 독감 명칭이 그렇게 붙여졌다.

한반도도 무사하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당시 인구의 38%인 740여만 명이 감염돼 13만9128명이 희생됐다. 이른바 1918년 ‘무오년(戊午年) 독감’이다.

독감과 감기는 원인 바이러스가 전혀 다르다. 감기는 리노바이러스 등 200여 개 바이러스 때문에 콧속, 인두 등 상기도(上氣道)에 감염 증상이 생기는 경증(輕症)질병이다. 천연두, 흑사병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3대 전염병’으로 불리는 독감은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기도 질병이다.

A·B·C형으로 나뉘는 독감 중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고병원성(高病原性)인 A형이다. 전염성이 강하고 증상이 심하다. 세균성 폐렴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돌연변이가 빈번해 백신을 제때 개발하기도 어렵다. 닭 등 조류에 침투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에 전염된 후 변이를 일으켜 인간 사이에 전파되기도 한다. 계속 변종이 나타나는 탓에 독감 백신을 접종받아도 예방 효과는 50~60%에 그친다.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우리나라에서 A형 독감은 주로 찬바람이 부는 11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 기승을 부린다. 매년 인구의 10~20%가 감염될 정도로 발병률도 높다.

올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독감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각종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돼 독감의 치명성이 예전보다 크게 낮아졌지만 합병증을 생각하면 예방이 최선책이다. 독감 백신 접종효과가 제한적이긴 해도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와 임신부 등은 예방접종을 거르지 않는 것이 좋다.

평상시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로를 피하고, 손을 자주 씻고, 독감 유행 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과 같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