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등단 20년을 넘기며 한국 문단을 이끄는 중견 작가가 된 김숨(사진)이 중단편 세 편을 엮은 소설집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문학동네)를 최근 펴냈다.
소설집은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느림에 대하여’를 개작한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로 시작해 201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중편 ‘뿌리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중세의 시간’을 새로 쓴 ‘슬픈 어항’으로 끝을 맺는다.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소설이지만 작가는 특정 서사와 이미지를 공통적으로 집어 넣어 각 작품이 상호 연관성을 갖도록 했다. ‘뿌리 이야기’는 실제 나무 뿌리로 미술작품을 만드는 ‘그’와 오랜 연인 ‘나’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그’는 처음에 실린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에 등장하는 ‘오빠’임을 알게 된다. 두 발이 그 자리에 자신을 정박시키는 뿌리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면이 두 작품과 두 인물에게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과 다른 느린 속도의 걸음걸이를 가진 엄마를 보며 점점 빨라지는 자신의 속도를 버린 ‘오빠’의 현재다.
‘그’는 “나무는 자신이 태어난 자리와 죽은 자리가 같은 존재”라며 나무를 이동과 이식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각 작품은 인간이 타의에 의해 어딘가로 날아가게 되는 ‘뿌리가 들린 나무’ 같은 존재임을 드러낸다. ‘뿌리 이야기’에서 갑작스레 ‘나’의 방에 정물처럼 들어선 고모할머니는 노년에 홀로 집으로 옮겨지고, 이후 또다시 양로원으로 옮겨진다.
‘슬픈 어항’에는 결벽증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사는 모녀가 등장한다. 이 모녀는 한 곳에 정박해 ‘뿌리를 내리고’ 사는 듯 보이지만 이들의 삶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다. 창문을 포함해 외부와의 통로가 차단된 집에는 ‘나’가 들어가 누우면 꼭 맞을 사이즈의 어항만이 놓여 있다.
세 편의 소설에서 작가는 이처럼 오랜 시간 땅을 파고드는 나무 뿌리의 습성을 인간에게 투영했다. 자기 안의 나를 찾아 정착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론 바깥 세계를 지향해 이동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든 ‘존재 3부작’이라고 할 만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