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휴식처' 된 석좌교수, 강의 안해도 '연봉 1억'

입력 2019-11-17 17:47
수정 2019-11-18 03:06
학계의 ‘권위자’를 모시는 석좌교수 자리가 전관들의 휴식처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석좌교수제도가 대학의 평판을 올리는 용도로 자리매김하면서 캠퍼스의 ‘전관예우’로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고려대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을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법률 전문가인 문 전 총장이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로 임용된 데는 디지털포렌식 시스템을 검찰에 최초로 도입한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전 총장이 대검찰청 과학수사2담당관으로 재직한 기간은 2005~2007년으로 2년 정도다. 문 전 총장을 ‘디지털포렌식의 권위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4월 퇴임한 박상우 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과 2017년 공직을 떠난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도 고려대 공학대학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올 2학기 수업 개설 목록에서 이들의 수업은 찾아볼 수 없다. 고려대 관계자는 “석좌교수 특성상 전임교원처럼 강좌를 꾸준히 열긴 힘들다”며 “특강과 연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좌교수는 대학 자체 예산이나 기업 출연금으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석학들을 모시는 제도다. 대학마다 규정은 다르지만 “학교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 또는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사람”을 임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교수를 비롯해 고위 공직자, 정치인, 공공기관 임원 등이 주요 대상이다.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 연구를 활성화한다는 기존 취지와는 달리 기본적인 강의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25개 대학에서 채용한 204명의 석좌교수 중 61명의 교수가 강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최고 1억3000만원의 연봉을 받는 전직 교육부 장관도 있다.

석좌교수 자리가 공직자들이 기업으로 건너가기 전 거치는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전 공직자가 근무했던 부서와 연관 있는 업체에 일정 기간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김덕중 전 국세청장은 2014년 공직 퇴임 후 중앙대에서 석좌교수로 지내다 취업제한기간(2014년 당시 기준 2년)이 지난 2016년 11월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이 됐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도 2014년 공직을 떠난 뒤 성균관대 석좌교수직을 맡아오다 2017년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이 됐다.

교수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기업 대표직을 맡은 사례도 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2013년 국무총리실장 퇴임 후 연세대 석좌교수로 임명됐다가 3개월 만에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선출되며 교수직을 내놨다.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현 제주국제자유도시방송 사장)도 2014년 3월 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석좌교수에 임명됐다가 KT스카이라이프 사장에 내정되며 교수직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내놔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들도 과거보다는 임용 기준을 까다롭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