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택도 2년 거주 의무화…매물절벽 부른다

입력 2019-11-17 16:44
수정 2019-11-18 03:04
시세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장기간 소유만 하고 있던 1주택자들이 ‘절세’ 대신 ‘상승 가능성’에 베팅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도차익에서 최대 80%를 공제해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혜택이 연말로 종료되지만 이를 우려한 ‘절세매물’은 쏟아지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는 2년간 거주해야만 해당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서울 주요 지역의 매물잠김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절세’보다는 ‘매각차익’

그동안 집을 한 채만 갖고 있던 소유주는 9억원이 넘는 고가 주택이라도 양도세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도 살지 못했다고 해도 10년 이상 가지고 있었다면 장특공제를 통해 양도세를 아낄 수 있었다.

지난해 ‘9·13 대책’ 직후 개정된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라 2020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같은 주택을 팔더라도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 한해서만 최대 80%의 장특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방에 직장이 있거나 자녀 교육문제 혹은 자금부족 등으로 거주를 못하고 팔아야 한다면 손실이 막대하다. 비(非)거주로 15년 이상 보유하더라도 1년에 2%씩 최대 공제율은 30%에 그친다.

10년 전 5억원에 산 아파트를 15억원에 매각할 경우 12월 31일까지 잔금을 치르면 양도세는 1471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내년 1월 1일 이후 매각한다면 양도세는 1억1176만원으로 일곱 배 넘게 불어난다.

최대 1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아끼기 위해선 올해 매각해야 하지만 이 같은 ‘절세매물’이 많지 않았다는 평가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8월 말 82.4였던 서울의 매수우위지수는 9월 말 98.5, 지난달 말 114.5 등으로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주는 119.1로 120에 육박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매수자가 매도자에 비해 많다는 의미다. 김균표 국민은행 부동산플랫폼부 수석차장은 “이 지수의 기초자료가 되는 매도자 문의 비율이 4월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하반기 들어 매물잠김 현상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세무팀장은 “잔금 완료까지 약 3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나올 매물은 다 나왔다”며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자 서둘러 팔기보다는 최적의 매각 타이밍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물 자취 감추나

전문가들은 9억원 이상 주택이 많은 서울의 매물잠김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거주 요건을 맞추려면 최소 2년간은 매각이 불가능하다. 경기 지역 등지에 살면서 투자한 경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입주까지 시간이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팀장은 “내년 이후라도 2년 거주 요건만 충족한다면 최대 80%의 장특공제가 살아난다”며 “여윳돈이 부족한 1주택자도 대출을 받아 세입자를 내보낸 뒤 2년 거주 후 매각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9억원 이상 주택이 많고 주거 선호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상대적으로 매물잠김 현상이 더 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시세 9억원 이상 가구 수 비중(아파트 기준)이 가장 높은 곳은 서초구(92.3%)와 강남구(92.1%)다. 용산구(82.4%)와 광진구(55.5%), 마포구(46.5%) 등도 서울 전체 평균 35.3%를 웃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거주요건 강화로 고가 주택을 장기 보유한 사람들의 매물이 나올 여지가 줄어들게 됐다”며 “재건축 지위양도금지, 분양권 전매 금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과 맞물려 매물잠김 현상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매수 대기 수요가 많고 주거 선호도가 높은 강남권에선 이 같은 매물잠김이 가격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