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엔 왜 태국 비누가 전시돼 있을까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19-11-16 09:42
수정 2019-11-16 13:02

금속 투구, 코끼리 조각품, 서양화, 가죽 채찍, 유리 세공품···.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의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는 기념품들입니다. 하나같이 국내에선 보기 드문 귀중품들이죠.

이 선물은 모두 국가 소유입니다. 산업부 장·차관들이 해외 출장을 나갔다가 해당국 장관 등과 회담한 뒤 받은 기념물품을 전시한 것이죠. 해당국이 장관 ‘개인’에게 준 게 아닌 만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겁니다.

전시 물품을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독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호주 중국 등에 집중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자원 강국’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자원이 부족한 만큼 역대 산업부 장관들이 자원 확보 외교에 적극 나섰다는 방증일 겁니다.

각국 선물에 값을 따질 수 없겠습니다만 한 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기념품이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형환 전 장관이 2016년 10월 UAE에서 받은 커다란 ‘금빛 시계 장식’입니다. 유명한 셰이크 만수르 UAE 부총리가 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일부 선물은 개인이 운반하기엔 너무 무겁기 때문에 별도의 탁송 절차를 거쳐 들여온다고 합니다.

한 켠엔 웃지 못할 선물도 놓여있습니다. 백운규 전 장관이 작년 5월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를 예방한 뒤 받은 ‘생필품 세트’입니다. 이 세트는 비누 2개, 샴푸 1개, 컨디셔너 1개, 클렌징 폼 1개, 작은 비타민 1통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일부의 유효기간은 이미 지났더군요. 태국 총리실에서 장관 개인에게 준 선물인데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그냥 전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관리규정에 따르면 해외에서 공식적으로 받은 선물의 경우 인사혁신처에서 종합 관리합니다. 각 부처에선 장·차관이 출장 때 받은 기념품 등을 인사처에 신고한 뒤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산업부가 로비에 전시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죠. 부패·훼손 가능성 때문에 장기 보관하기 곤란하다면 자체 심의위원회를 열어 처분을 결정한 뒤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선물 보관규정이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장·차관들은 방문국에 어떤 선물을 줄까요. 일률적인 규정은 없습니다. 각 부처의 현안이 있는 개별 부서에서 필요에 따라 결정하는 게 보통이지요. 다만 한국적인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대국에 어떤 협의를 하기 위해 방문하느냐에 따라 선물이 달라지는 게 보통”이라며 “예컨대 조선업 관련 협의차 방문할 경우엔 거북선 모형을 구입해 들고 간다”고 말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