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선 ‘긱(gig)’이라는 공연이 자주 열렸다. 밴드 멤버를 미리 짜지 않고,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그때그때 섭외해 펼치는 즉석 합주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긱은 지구촌 곳곳에서 뜨거운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승차공유, 음식배달 같은 O2O(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을 타고 급성장한 ‘긱 이코노미’ 때문이다.
스마트폰 들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
긱 이코노미는 정보기술(IT) 플랫폼을 활용해 원할 때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경제 현상을 뜻한다. 우버나 타다의 운전기사,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에서 주문한 음식을 나르는 배달기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일반적인 직장인처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근무한다. 쉽게 말해 IT 플랫폼을 활용해 일하는 ‘자발적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 번역, 마케팅 등 전문 분야 프리랜서를 연결해 주는 앱(응용프로그램)도 여러 나라에서 인기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긱 이코노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11개국 근로자를 조사한 결과 플랫폼에서 구한 일자리를 본업으로 삼은 사람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선 1~4%에 그쳤다. 본업은 따로 있고, 부업 삼아 추가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선 긱 이코노미로 부수입을 올린다는 비중이 30%를 훌쩍 넘었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긱 이코노미의 순기능으로 꼽힌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가 기존 노동자의 밥그릇을 빼앗고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할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택시기사들이 우버와 타다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승객이 줄어들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다. 기업들이 전문인력을 채용하거나 육성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데려와 쓰고 내보내는 관행이 퍼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근로자인가, 자영업자인가’ 지위 논란
근로자에게 보장하는 ‘노동 3권’과 ‘4대 보험’을 긱 이코노미 체제에서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논쟁거리다. O2O업계는 “플랫폼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해석이 애매한 대목이 많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5일 요기요 계열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대행기사 5명이 낸 임금체불·계약변경 관련 진정에서 이들을 근로자로 분류했다. 서류상 신분은 개인사업자지만 고정시급이 보장됐고 본사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이뤄진 만큼 근로자로 보는 게 맞다고 해석했다. 이들이 근로자로 인정되면 법정근로시간, 최저임금 등 각종 규제가 뒤따라올 소지가 있다. 지난달 검찰에 기소된 타다의 경우, 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으면서도 직원처럼 통제·관리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있다. 파견법 위반인 위장 도급 아니냐는 것이다.
플랫폼 근로자의 지위에 관한 논란은 해외에서도 거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9월 승차공유업체가 계약한 근로자를 피고용자로 대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발효되는 내년부터 관련 기업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유형의 근로자를 낡은 제도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우려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기반의 혁신적 고용 형태를 과거 20세기 모델에 끼워 맞추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